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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식품, 라면과 ‘동고동락’한 50년

[50대기업 해부] 삼양식품ⓛ…태동과 성장

조민경 기자 | cmk@newsprime.co.kr | 2011.03.25 08:54:45

[프라임경제]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 상황과 경영 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반대로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조명하는 특별기획 ‘50대기업 해부’ 이번 회에는 삼양식품을 조명한다. 삼양식품의 태동과 성장, 계열사 지분구조와 후계구도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삼양식품은 지난 1960년대 국내 식량 자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라면을 선보인 회사다. 지난해 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2734억, 116억원으로 라면업계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창업주 전중윤 회장(現 명예회장)은 지난 1961년 삼양제유주식회사를 설립, 동년 10월 삼양식품공업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했다. 

◆식량난 해결 위한 ‘라면’ 탄생

전중윤 회장은 남대문 시장을 지나던 중 사람들이 꿀꿀이죽을 먹는 것을 보고 국내 식량 자급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전 회장은 이에 평소 일본을 드나들며 봐왔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라면의 국내 생산을 계획하게 된다.

   
삼양식품 전의장 회장(좌)와 창업주인 전중윤 명예회장. 
1963년 전 회장은 국민보건향상과 식량자급을 내걸고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일본 명성식품으로부터 기계 2대를 도입하면서 같은 해 9월15일 ‘삼양라면’을 세상에 내놓았다.

초기 삼양라면은 중량 100g, 10원의 가격에 출시됐다. 당시 꿀꿀이죽이 5원이고, 커피 한 잔이 35원임을 감안했을 때 서민층에게 적당한 가격이었다. 서민층의 식량난 해결을 위해 적당한 가격을 책정했음에도 불구 삼양식품은 삼양라면 출시 이후 3년간 누적 적자를 기록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곡식, 특히 쌀 위주의 식생활에 익숙한 우리에게 당시 꼬불꼬불하게 생긴 라면은 생소했던 것. 사람들이 라면의 ‘면’을 섬유나 실로 오인해 선뜻 구매하려하지 않자 삼양식품은 ‘직접시식’을 통해 라면을 알리기 시작한다.

라면을 시식한 소비자들은 라면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게 됐고 이후 삼양라면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이 같은 추세로 삼양라면은 출시 3년만인 1966년 11월 한 달간 240만 봉지가, 1969년에는 월 1500만 봉지가 판매되면서 초기 적자를 만회하게 된다.

1960년대 후반 삼양식품이 삼양라면을 앞세워 라면 시장을 개척하고 성장가도를 달리게 되면서 농심(舊 롯데공업주식회사 롯데라면) 등이 라면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그러나 이들 회사는 이미 라면 시장을 선점한 삼양식품에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 
   
◆우지파동에 ‘휘청’…부도까지 잇따른 악재

전중윤 회장은 라면으로 식량난과 식량자급 문제가 일부 해소되자 이어 1973년 대관령 일대에 600만평의 초지를 개간해 우유와 쇠고기를 생산해 단백질 공급을 위해 노력했다. 이어 1980년대에는 미국에 현지 법인인 삼양 USA와 현지 공장을 설립 하고, 중국 청도에 삼양식품 유한공사를 설립하는 등 해외진출에 힘써왔다.

삼양식품은 농심이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후원업체로 나서면서 라면 시장에서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듬해 1989년 ‘우지파동’이라는 악재가 닥치면서 삼양식품은 위기를 맞게 됐다.
 
우지파동은 삼양식품을 비롯한 5개 식품회사가 식용이 불가능한 공업용 우지를 사용했다는 의혹으로, 이미 생산된 삼양라면은 폐기처분됐고 생산 중단 사태를 맞게 된다. 우지파동 전 30%대에 달하던 삼양식품의 라면 시장 점유율은 우지파동으로 10%까지 추락하게 됐다. 이후 1995년 무죄판결을 받았음에도 이미 소비자들에게 부정적 인상을 안긴 우지사건의 여파로 1990년대까지 적자가 이어지고 라면 시장 1위를 농심에 내주는 등 시장에서 위축되기에 이르렀다.

삼양식품은 1990년 삼양식품공업에서 삼양식품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1997년 월곡동으로 사업을 이전하는 등 재기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8년 IMF 당시 삼양식품은 우지파동과 함께 사업 다각화 추진으로 경영난을 겪게 된다. 회사는 결국 어음을 막지 못하게 되면서 부도 처리됐고 화의를 신청하게 된다. 같은 해 서울지법은 삼양식품을 비롯한 계열사에 화의 인가를 최종 결정했다.

이후 2003년 대표 채권금융기관인 신한은행과 경영개선을 위한 약정을 체결했고 2년 뒤인 2005년에는 화의가 종결됐다.  

◆경영 정상화 성공, 이제는 업계 1위 재탈환

이를 계기로 삼양식품은 경영 정상화를 이뤄내면서 신사업을 성장 동력으로 제시했다.

   
삼양식품 본사.
지난해 3월에는 전중윤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추대되고 장남 전인장 부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2세 경영을 확고히 했다. 전 회장은 지난해 취임사를 통해 ‘신사업 진출과 신제품 개발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영업담당으로 입사한 이후 경영관리실과 기획조정실 사장을 거쳐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지난 23일부로 삼양식품은 전인장, 이선호 공동대표 체제에서 전인장 대표이사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됐다.

지난 50년간 라면을 기반으로 성장한 삼양식품은 전 회장을 필두로 향후 50년을 계획하고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해 라면 업계 1위 탈환을 목표하고 있다. 라면 사업 외에도 삼양식품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제시한 신사업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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