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 상황과 경영 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반대로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2,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조명하는 특별기획 [50대 기업해부] 이번 회에는 애경그룹을 조명한다. 그룹의 태동과 성장, 계열사 지분구조와 후계구도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지난 2월11일 애경그룹의 ‘어머니’ 장영신 회장의 KAIST 명예경영학 박사학위 수여식이 있었다. 그녀가 경영에 나선지 39년 만의 일이다. KAIST 측은 장 회장의 명예경영학박사 학위 수여에 대해 △국내 여성경영자의 표본이라는 점 △다양한 사회공헌활동 및 친환경 세제 개발로 환경보호에 앞장선 점 △카이스트 이사로 재직하며 카이스트 발전에 기여한 점 등을 공로로 꼽았다.
◆애경의 신화는 장영신 회장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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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경그룹은 장 회장을 중심의 전형적인 가족경영을 해왔으나 장 회장은 창사 50주년이 되던 2004년 경영에서 손을 뗐다. 어머니가 떠난 자리는 두 아들과 딸, 그리고 사위가 대신한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사진 좌),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사진 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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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은 비누회사였던 애경을 화학, 유통, 항공에 걸쳐 2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매출액 3조9000억(2010년 기준) 그룹으로 키워냈다는 점에서 장 회장이 실제 출근한 1972년부터를 애경그룹 역사가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1956년 들어선 서울 영등포에 공장을 짓고 국내 최초 화장비누인 ‘미향비누’를 생산한다. 애경유지는 상공부가 귀빈들의 시찰 코스로 추천하기도 했으며 1960년에는 윤보선 당시 대통령이 영등포 공장을 직접 방문할 정도로 명성도 높았다. 그러나 한창 승승장구를 이어가던 어느 날, 채 창업주는 심장병으로 돌연 사망한다. 36세의 평범한 주부였던 장 회장은 이후 경영에 나섰지만 주변인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경리학원에서 복식 부기를 수강하며 바닥부터 경영을 배워나갔다.
주변의 우려 섞인 시선과 달리 그녀는 공장을 지방으로 확대 이전하는 한편 남편이 계획만 했던 석유화학 원료제조 분야를 미래 지표로 삼아 애경유화, 애경화학, 애경 PNG(전 애경 공업), 애경 정밀화학, 코스파 등 관련 회사를 속속 설립하는 등 성장 가도를 달리게 된다.
◆장 회장 이후 2세경영 제대로 가고 있나?
애경그룹은 장 회장을 중심의 전형적인 가족경영을 해왔으나 장 회장은 창사 50주년이 되던 2004년 경영에서 손을 뗐다. 어머니가 떠난 자리는 두 아들과 딸, 그리고 사위가 대신한다.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은 지난 1986년 애경유지 사장으로 취임한 뒤, 그룹의 백화점, 유통업 진출을 주도하며 후계자로서의 자질을 검증받았다. 그러면서 2002년 이후부터 자연스럽게 그룹 경영 진두지휘를, 2006년 11월부터는 그룹의 실질적 오너 역할을 맡는다.
채 부회장을 보필하던 동생 채동석 부회장은 유통사업을, 채승석 사장은 애경개발을, 사위인 안용찬 부회장은 생활항공 경영을 나눠 맡고 있다. 외동딸인 은정씨도 애경산업 부사장으로 화장품사업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 1970년대 이후 30년간 장영신 회장이 그룹 안정적 성장을 진두지휘했다면 채 총괄부회장은 1985년 입사한 뒤 신사업을 통해 점차 그룹의 덩치를 키우는 데 주력한다.
애경은 1993년 애경백화점 구로본점을 열며 유통업계에 뛰어든다. 그룹 주력 계열사인 애경산업은 공장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빈 땅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던 중 채형석 당시 사장의 지휘 아래 유통사업에 진출키로 결심한다. 1990년 12월부터 공사를 시작, 애경그룹 유통부문의 모태가 된 애경유지공업㈜ 애경백화점은 1993년 9월에 개점한다.
채 부회장의 야심찬 첫 작품 구로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 애경백화점 구로 본점의 안착을 바탕으로 △수원애경역사점(2003년 2월) △분당 삼성플라자ㆍ삼성몰 인수(2007년 3월) △평택역사점(2009년 4월) 등 잇따른 출점이 이뤄질 뿐 아니라 애경백화점 구로본점의 인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AK면세점 인천국제공항점(2001년 3월) △AK면세점 김포공항점(2005년 12월) △SKM면세점 인수(2007년 6월)를 성사시킨다.
이어 그는 구로 애경백화점을 종합쇼핑센터로 탈바꿈시키고 구로 애경백화점 여성전용주차장 부지에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을 만들어 남부권을 대표하는 지역 상권과 한류 메카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꿈을 키운다.
◆성공적으로 안착한 유통 vs 발목 잡은 부동산
하지만 이 사업으로 인한 악재를 그때는 예상했을까. 이렇게 실시한 구로의 애경백화점은 결국 채형석 총괄부회장의 발목을 잡는 사건을 야기한다. 채 부회장은 부동산 개발에 관심이 많았다. 부동산 개발을 통해 ‘제2의 성장’을 이루겠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아파트 분양사업을 위해 2005년께 대한방직 부지를 매입하는 등 오랜 전부터 부동산 개발을 계획해온 것으로도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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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역 AK플라자(구 애경백화점)와 구름다리로 연결된 쇼핑몰 ‘나인스에비뉴’는 지난 2000년 애경그룹이 구로역 AK플라자 옆 여성전용주차장 부지에 개발계획을 수립하며 지어졌다. | ||
당시 애경유지공업 소유였던 땅을 ARD홀딩스에 넘겼고 ARD홀딩스는 이 땅에 36층 규모 주상복합을 짓기로 결정한다. 이후 나인스에비뉴는 분양한 지 두 달여 만에 약 75%라는 기염을 토하며 2008년 완공된다.
하지만 쇼핑몰 분양자들은 이후 분양 광고와 달리 애경백화점이 연계되지 않았다는 점을 알게 되고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애경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또 애경이 위장계열사를 통해 수천억원대 비자금 조성한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ARD홀딩스가 지난 2003년 10월 분양 직전 나인스에비뉴를 890억원에 매각한 사실이 알려진다. 애경이 자체 개발하면 최소 4300억원 이상의 분양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음에도 890억여원에 부지를 매각한 것은 비자금을 조성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2008년 9월 검찰은 구로 애경백화점 사무실을 압수수색한다.
검찰 수사에서 애경그룹 채형석 총괄부회장은 △나인스에비뉴 대표로부터 PF대출을 도와주는 대가로 6억원을 챙긴 혐의, △애경그룹 계열사인 애경피에프브이원 자금 20억원 횡령 혐의, △2005년 대한방직 공장 이전부지 매입 협상 과정 중 매수권 청탁과 함께 대한방직 설범 회장에게 15억원을 건넨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결국 채 부회장을 구속 기소시켰다. 하지만 이후 재판부는 채 부회장에 대해 회사 공금 20억원을 횡령한 것과 대한방직 설범회장에 15억원을 건넨 혐의만 인정,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80시간을 부여했다. 이어 채 부회장은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수혜로 광복절 특사를 빌어 구속 한달여 만에 풀려난다. 사실상 그에게 적용된 범죄목은 특경횡령, 업무상횡령, 배임중재,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며 총 범죄 금액만도 약 42억원이었다.
당시 상가 수분양자들이 시행사 나인스에비뉴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반환소송은 원고 패소 결정 났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쇼핑몰 분양자 458명이 아예 애경그룹을 상대로 270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이 사건에 연루된 소송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한편, 채 부회장은 2003년 초 센트럴시티 인수 과정에서 투자 대가로 전 지방행정공제회 손모 이사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도 검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또 2008년 5월 애경은 모건스탠리의 부동산투자부문인 모건스탠리부동산, 군인공제회와 함께 자본금 1000억원 규모의 디벨로퍼인 ‘AMM자산개발’을 설립하지만 뚜렷한 사업성과가 없자 지난해 2월경 모건스탠리가 자본금 300억원 전액을 회수하는 수모를 겪는다.
◆무리한 투자는 위험 ‘교훈’
채 부회장은 부동산 사업 외에도 삼성플라자를 인수하는 한편, 저가항공사 설립과 부동산 관련 회사를 잇달아 설립했다. 그러나 애경의 의욕적인 움직임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그룹의 유동성이 크게 악화됐다. 야심차게 출발한 저가항공사 제주항공이 2007년 말 자본잠식 상태로 재무구조 개선이 요구되는 등 애경그룹이 진출한 새로운 사업영역에서 잇단 악재가 끊이질 않는다.
채 부회장 주도로 진행된 애경의 항공 사업 부문은 불과 5대의 항공기를 운항하고 잦은 고장 등으로 일부 노선에서는 결항하는 사고가 벌어지는 등 위태한 모습을 보인다. 실적은 현재까지 상당히 저조하다. 제주항공은 작년 매출 1575억원, 영업적자 60억원, 당기순손실액만도 111억원이다. 과거 실적을 살펴봐도 영업적자 및 당기순손실은 2009년 각각 270억, 333억, 2008년엔 각각 212억, 288억원에 이른다. 설립이후 6년째 적자다.
결국 2009년 말 부채가 자산을 초과해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고 제주항공은 결국 애경의 발목을 잡는 골치사업이 됐다. 애경은 수년째 유상증자를 통해 긴급 수혈하고 있다. 더구나 배럴당 108달러를 넘는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30개월 고점까지 치솟는 고유가는 제주항공에 적잖은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4월 애경그룹은 국내 53개 대기업집단 중 재무구조 평가에서 불합격을 받아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 요구를 받은 9개사 중 하나에 포함되는 굴욕을 경험한다. 따라서 애경은 지난해 재무개선 안정을 위한 자산 매각에 들어갔다. 지난해 10월 AK플라자 구로본점 건물을 세일 앤 리스백 방식으로 1500억원대에 매각한데 이어 AK면세점 지분 81%도 롯데그룹에 2800억원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2006년 분당 삼성플라자 인수하며 ‘유통3강 도약’이란 야심찬 포부를 밝혔던 애경이었다. 결국 채형석 그룹 총괄 부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백화점에 이어 항공사까지 무리하게 몸집만 키워나가며 불협화음을 보이자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 일게 된다.
하지만 그가 리스크를 택하며 무리한 사업을 진행한데는 2002년부터 실질적으로 그룹 경영을 해왔던 채 부회장이 구체적인 성과를 못 내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인 장영신 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부족한 그의 자질론에 성과로써 답을 해야 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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