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 상황과 경영 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반대로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조명하는 특별기획 ‘대기업 해부’ 이번 회에는 제일모직을 조명한다. 그룹의 태동과 성장, 계열사 지분구조와 후계구도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1938년 대구, ‘삼성상회’라는 이름의 간판이 걸린 15여년 후, 1953년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을 설립한데 이어 이듬해인 1954년 9월15일, 제일모직공업(현 제일모직)이 설립된다.
전쟁 후 불모지에서 출발한 제일모직은 한국섬유산업 발전과 함께 한국 경제사에 본격적인 산업시대를 열었다. 창업당시 자본금 5000만원으로 시작해 9100만원의 매출액을 냈던 제일모직은 반세기 역사를 지내오며 49명이었던 임직원은 3783명으로 자본금과 매출액(2010년 기준) 각각 2500억원, 5조186억원을 기록하는 기업 성장을 거듭하며 업계를 리드하고 있다.
◆400년 전통 영국 모방과 정면승부
해방 후 번듯한 양복을 입은 사람을 ‘마카오 신사’라 불렀다. 당시 마카오 등지에서 쏟아져 들어온 옷감이 양복시장을 휩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변변한 양복지를 만들지 못했던 상황과 외국제품을 써야 한다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만든 결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 회사원이 ‘마카오 양복’을 한 벌 사려면 석 달 월급을 고스란히 모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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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모직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비싼 해외 옷감이 양복시장을 휩쓸고 있을 당시 ‘모두가 손쉽게 양복을 입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직물 사업에 뛰어 들었다. | ||
하지만 모직공장을 짓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 회장은 ‘최신식 대규모’ 공장을 짓길 원했다. 결국 일본과 정부의 도움을 받아 공사에 착수, 1956년 5월 제일모직 공장은 시범 생산에 들어갔다. 이후 시행착오를 겪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제에 뒤지지 않는 복지를 만든다. 제일모직 양복지 한 벌 값은 영국제의 5분의 1 수준인 1만2000환. 7년 뒤 제일모직은 싱가포르에 복지를 첫 수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모직의 성장둔화 ‘의류’에 날개 달다
한동안 원사와 모직물 생산에 전념해 온 제일모직은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에 걸쳐 화섬과 의류사업에 진출했다. 이를 위해 1969년 경북 경산군 소재 화섬공장을 완공하고 이후 1972년 제일합섬으로 분리 독립했다.
1970년 설립된 제일 복장은 1975년 삼성물산에 통합돼 에스에스패션의 모체가 됐다. 거의 같은 시기에 두 개의 신규 사업을 시작한 것은 모직물사업에 대한 투자가 거의 끝나 신규투자의 여력이 생겼으며, 세계적으로 모직산업의 선장둔화에 따른 사업다각화의 개념이었다.
1976년 안양디자인 개발센터 준공을 시작으로 제일모직은 1977년 여성기성복 라보떼를 선보였고, 소모방 급증에 대비 1978년 구미에 제2공장을 세웠다. 남성복시장 진출을 위해 1982년 안양에 대규모 신사복공장을 준공했으며 1983년 남성복 갤럭시를 출시, 1989년엔 지난해 국내 패션시장에서 단일 브랜드로 매출 5000억원을 처음으로 돌파한 빈폴까지 출시하며 의류부문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전자재료 사업으로 네번째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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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 회장은 모두가 반대했던 모직공장을 끝까지 고집해 결국 7년 뒤 싱가포르 수출이라는 쾌거를 이룬다. 사진은 설립초기 제일모직 대구공장 부지 전경 | ||
제일모직은 1980년대 들어 섬유산업의 성장한계를 실감했다. 1980년대 중반은 중화학, 자동차, 전자 등의 첨단산업이 급성장함에 따라 섬유산업의 성장세가 둔화되던 시기였다. 따라서 당시 섬유를 중심으로 수직적 계열화에 가까운 사업구조를 가진 기업들은 점차 쇠락했다. 제일모직은 장기적 측면에서 사업 구조조정의 필요성도 인식하고 비섬유 부문으로의 사업 다각화를 시작한다.
당시 삼성그룹은 총 1조원 규모의 석유화학 단지 건설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에 제일모직은 기능성수지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중심으로 케미칼 사업을 전개하기로 결정했다. 이들 제품은 일반 범용수지보다 그 당시 5~10배나 부가가치가 높은 특수수지 제품으로 제일모직이 오늘날 케미칼 사업에서 특화된 고부가 경쟁력을 갖추는 원동력이 됐다.
케미칼사업 발전을 위한 중장기 경영전략을 추진하던 제일모직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전자재료 사업을 선정, 또 한 번의 기업 변신에 도전한다. 이후 1994년 의왕사업장에 EMC(반도체회로보호제) 생산공장을 준공하고 21세기 신수종 전기재료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당시 시장에서는 반도체 등 세계 전자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고부가 핵심 전자소재 및 재료사업이 차세대 유망사업으로 부각되고 있었다. 또한 미국의 듀폰과 일본의 도레이, JSR, 미쓰비시 등이 화성사업을 근간으로 전자재료 사업에 참여했다는 점은 제일모직의 주요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전자재료 사업은 그룹 내 전자, 정보통신 관계사들과의 긴밀한 공조 아래 진행되며 사업의 유기적인 협력 관계를 지속, 사업을 조기에 안정화시키고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
90년대 사업진출 초기만 해도 국내 전자재료 관련 산업은 기초 기술 부족으로 원재료 해외 의존도가 75% 이상이었다. 당시 삼성그룹 내 전자재료 수요는 1조원 이상이었으나, 국내 전자 재료 기술의 부족으로 대부분의 소재를 일본에서 수입해 사용하고 있었다.
제일모직은 삼성기술원이 개발해온 반도체 회로 보호제(EMC) 기술을 인수해 1995년 생산을 시작한 후 이듬해부터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에 적용돼 전자재료 사업의 씨앗이 됐다.
◆합병 위기 넘기고 화학사업 집중
하지만 1994년 위기가 찾아왔다. 4월30일 삼성물산이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를 흡수ㆍ합병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한 것. 당시 김영삼 정부는 업종 전문화 정책을 앞세워 그룹 계열사 수를 줄이도록 대기업을 압박했다. 이에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에 나눠졌던 패션사업을 물산에 몰아주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모직은 삼성의 명예다. 그 명예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에게 제일모직은 삼성의 모회사나 다름없었으며, 수많은 인재들이 제일모직에서 배출됐기 때문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결국 자신과 계열사들이 갖고 있던 주식을 우리사주조합과 임원들에게 매각한 뒤 종업원 지주회사의 성격을 가미해 합병의 압박을 피했다.
합병의 위기를 넘긴 제일모직은 변신을 서둘렀다. 패션사업의 해외진출을 가속화하고 10% 안팎에 이르던 화학사업의 비중을 끌어올리는데 주력했다. 이러한 제일모직의 노력은 1995년 ABS수지 개발 성공, 1999년 세계최초 합성수지 독자개발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후 사업고도화를 위해 추진한 전자재료 사업 또한 2002년 구미 IT생산단지 중공으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고, 2003년부터 반도체 소재에서 디스플레이 소재로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신성장동력 전자 재료, 성공할까
준비된 사업다각화로 직물에서 패션으로 다시 화학에서 전자재료 부문으로 주력 사업을 바꿔온 제일모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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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모직은 전자재료 부문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고 발표했으며 올해 R&D 과정을 마친 첨단 소재는 삼성전자, 삼성SDI에 공급될 예정이다. 사진은 제일모직 의왕R&D센터 전경 | ||
이밖에도 제일모직은 첨단소재 개발을 위한 R&D 역량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제일모직 황백 대표이사는 지난 5월17일 중국 광저우에서 개막한 플라스틱 전시회인 ‘차이나플러스’에서 “2013년까지 중국시장에서 소재 매출 7억달러를 달성하겠다”며 케미칼과 전자재료 부문을 회사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하기도 했다.
올해 전자재료부문은 디스플레이 필름소재를 집중 확대하고 공정소재 집중화를 추진해 차별적 경쟁역량을 강화하며 12년만에 패션ㆍ화학 업체에서 명실상부한 전자 재료 업체로 거듭날 전망이다.
특히 이는 이건희 회장의 둘째 사위인 김재열 사장이 이를 주도하고 있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전자재료 사업부문은 제일모직 영업이익에서 44.1%를 차지하며 31.8%를 차지하는 화학과 22.1% 패션사업 부문을 앞장서고 있으며 올해 171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패션에서 화학, 전자재료까지 다양한 변신을 거듭한 제일모직은 2011년을 제일모직 역사의 새로운 분기점으로 만들겠다며 새로운 10년의 키워드로 ‘미래도전’을 택하고 경영목표인 ‘미래사업의 조기 현실화’를 위해 각 사업부문별로 차별화된 경영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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