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본지 창간직후 기획 연재됐던 '한국증시 110년 그 파동의 역사'를 재개합니다. 이 기획시리즈에서는 희귀한 자료들과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史實들을 잇따라 단독 보도함으로써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1918년 전세계적으로 조류독감이 유행할때 한국도 비켜가지 못하고 14만명이 사망한 사실을 사료와 함께 특종보도, 유력신문이 본지기사를 인용보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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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년 창간된 조선일보 자매지 '조광' 표지 모습. 이 잡지에서 주식투자의 투기성과 정석투자를 강조하는 글이 실렸다> | ||
본지는 당시 불가피한 사정으로 중단됐던 이 시리즈를 12월3일부터 재개합니다.이번 시리즈에는 증권역사를 기록하기에 앞서 우선 1935년 1월 창간발행됐던 조선일보 자매지 조광(朝光)의 증권투자 가이드 기사를 2회(11~12회)걸쳐 원문과 함께 이해에 도움이 될만한 연관 사진들을 소개합니다.
당시 조광은 증권투자 가이드 기사를 1월호와 2월호에 나누어 실었는데 본지 역시 2회에 걸쳐 소개할 계획입니다.
이건혁이란 사람이 쓴 이 글은 당시 주식투자의 한탕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장기 정석투자를 권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될수 있는 증권투자 지침으로 예나 지금이나 전혀 다르지 않은 투자행태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1930년대엔 금광과 주식이 쌍두마차였다면 현재는 부동산과 주식이 쌍두마차라는 점에서 대비돼 눈길을 끌고있습니다.
1930년대의 주식투자에 관한 내용.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하기 위해 최대한 어투나 철자 등 원문을 그대로 기술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질책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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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광 창간호에 실렸던 취인(주식) 특집기사 원문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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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불었던 금광투기 열풍에 관련된 기사> | ||
돈 돈 돈돈 돈봐라! 돈타령이 아니라 돈없이 살수없는 세상이라 누가 돈을 싫다 할가? 일전도 돈이오 십환도 돈이지만 적어도 몇만환 이상을 잡으랴면 제아무리 고봉(高俸)을 받는 사람이라도 80평생을 살아도 꿈꾸지도 못할 일이오 중소상인으로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럭저럭 생활해가고 자식을 가르치랴면 멫만환 한손잡아야겠으니 어시호(於是乎, 이제야) 일확천금을 꿈꾸게 되는 것이오 십만환대 백만환대를 꿈꾸는 사람은 투기라도 바랄가 독갑이를 사괴기 전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투기시장(投機市場)의 표면(表面)과 이면(裏面) -
천냥만냥패, 금광군(軍), 미두군, 이런 별명으로 대접받는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실지로 행하는 투사들이다. 옛날 어느 서철(西哲)말하기를 크고 적고 표면에 나타나고 안나타나는 구별은 있을망정 사람으로서 투기심이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한다. 투기성 – 도박성은 누구나 가진것으로 일확천금이 되기만 한다면 욕좀 먹기로서니 투기판에 투족치 않을 사람이 있으랴.(좀 대담한 말같지만)
그러면 투기판에 들어가기만 하면 누구나 다 일확천금이 되느냐 다른 방면도 있겠지만 광산경기를 떠드는 이때이라 광산이야기를 약간 하고 투기시장(주식과 미두)의 표면을 들추어 보기로 하자!
해소(解消)된 금광경기(金鑛景氣)대두(擡頭)된 군수광업(軍需鑛業)
조선의 금광은 세계에 자랑할만한 좋은 것으로 이때까지의 금광이란 얼른 말하면 수박것할기와 똑같었다. 많은 투자금을 가지고 대규모로 채굴한 사람은 적고 대부분이 지피(地皮)에서 멫십척쯤 허적거리다가 광맥이 중단되든지 하면 그만 집어던지고 다른 것을 긁적거리던 것이 보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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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당시 불었던 금광열풍을 짐작케 해주는 당시 신문 연재소설. 노다지는 금광을 빗댄말이다> | ||
근년(近年) 금광으로 대성공한 사람이 한두사람이 아니오 세상에 소문난 부자가 된 사람이 없는 겅이 아니나 수십처 광무소(鑛務所)에 출입하는 친구들이 모다 풍성풍성한 것이 아니오 작년의 소위 금광경기 – 요리점에 나타난 경기라는 것은 금광 뿌로카경기라 할 수 있고 실제의 금광경기는 흰옷입은 사람들의 차지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뿌로카경기란 무엇이냐.
모다 그러하였다는 것은 아니나 이런일도 건성드뭇하였다 한다. 누가 출두를 하였다. 아무개광(鑛)이얼마에 교섭(交涉)된다. 오늘은 십만환의 시세가 올렀다. 어름거리다가는 노친다. 오십만환쯤 더주어야한다고 실제 상담(商談)도 없는 날조(捏造)의 허시세를 떠들게 하여가지고는 (토목건축업으로 치면 담합이라 할가) 어수룩하게 덤벼든 친구를 골탕먹인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다.
금 한돈 25환쯤 가리라고 바라던 사람도 적지 않었으나 11환 60전에 경성시중시세가 찰딱 달라붙어버리었고 금광경기가 한풀 꺾인대신에 시대성(時代性)을 띄어가지고 군수관계광산에 착수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수난 사람도 꽤 있는 모양이오 앞으로 유망한 광을 잡고있는 사람도 제법 많은 모양인데 이렇게 성공 또는 성공의 약속을 받은 사람은 일확천금이 아니라 일확십만금백만금이 가능하겠으나 광산총관계자수에 대한 비율로 본다면 0.0000001%나 될가말가? 맨주먹가지고 광무소를 문턱이 달토록 드나들었다ㅅ자 일확천금미 참으로 되기는 아득한 노릇이니 투기심만 가지고서는 아득한 노릇이니 투기심만 가지고서는 광산성공은 몽상이오 실제로 큰 자금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성공하기는 틀린 일이다.
취인소(取引所)와 투기(投機)
미두군(米豆軍)이란 별명을 듣고서 투기시장에 드나드는 [상장사(相-師)]는 일확천금이 가능하냐? 조선서 [상-사(相-師)]를 통칭 미두군이라고 붙인 것은 당초 조선에는 투기시장이라고는 단 한곳사이에 미두 취인소 (米豆取引所)가 있었기 때문에 주식취인소에 드나드는 사람까지도 미두군 소리를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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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경성 황금정이 있던 을지로 모습> | ||
인천미두취인소는 조선 유일의 취인소이었고 경성 황금정(黃金町) 2정목(丁目)에 경성주식현물취인시장이 있어 이곳에서 주식취인을 시장규칙에 의하야 매매하여 오다가 말썽많든 경인취합병으로 조선취인소가 되어가지고 기미(期米)는 인천지점 미두시장에서 주식은 경성본점 증권시장에서 하기로 취인소령 발포실시와 공히 유일의 주식조직의 취인소가 되었고 부산, 대구, 군산, 목포, 진남포 등 5개소 연취시장(延取市場)을 취인소로 승격하야 회원조직의 미곡취인소로 되었다가 최근 진남포취인소가 사실상 폐-(廢-)된 것은 세간주지의 일이다.
미두(米豆)와 주식(株式)
일확천금을 얻는자라면 미두를 해어야 하느냐 주식을 해어야 하느냐 미두란 것은 망이 미두이지 실상은 미(米)뿐이오 두(豆)는 취인치 않는다. 조선산업의 대종이 쌍이오 전인구의 8항을 점하는 것이 농민니라 조선에서 미곡취인소가 5개소나 되는 것도 이 때문인데 취인소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말로 하면 쌀의 공정시세를 내기 위한곳이 즉 미곡취인소이다.
그러면 쌀의 공정시세만 내었으면 그만이지 공정시세를 내기위한 취인소가 왜 일확천금의 고장이 되느냐하면 취인소란 투기시장인만치 취인소 본래적인 공정시세를 내이는 일에 병행하야 혹은 본래기는 이상으로 투기가 더 많게되는 것은 조선뿐 아니라 취인소란 세상 어듸를 물론하고 다 그런 것이다. 취인소와 투기가 서로 떠나지 못하는 까닭을 한말로 한다면 이 세상 만사가 전부 투기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방면이 일각일각 변전(變轉)되어가며 돌발사건이 나지 않은가? 경제계를 반영한 취인소가 가장 민감히 투기성을 보임은 차라리 당연한 일이다.
쌀의 공정시세를 내이는 곳이 미두시장임과 같이 주식의 공정시세를 내이는 곳이 주식(주식회사의 주식)의공정시세를 내이는 곳이 증권시장이다. 조선에는 주식과 기미 이외의 다른(면사(綿絲), 생사(生絲), 면화(棉花), 사탕(砂糖) 등) 취인소가 없으나 취인소에서 그날 그때의 세상을 반영하는 순서는 일본에 있어서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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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치(明治) 12년 1879년 -소화(昭和) 2 년 1927년까지의 일본증시 파동 모습을 나타낸 당시 그래프> | ||
주식회사 발달로 보아 세계에 큰소리할만한 일본의 경제계이라 각종 사업이 주식회사조직으로 영위되는만큼 주식취인소가 필요하고 각 사업회사의 주식공정시세를 내이는 곧 주식취인소가 주식조직인만치 주식취인소의 주식(동경으로 말하면 동경주식취인소주, 대판은 대판주식취인소주, 경성은 조선주식취인소주)의 공정시세도 내이게 되는데 취인소주식이 가장 투기성이 풍부하며 일본에 있어 동신(東新, 東京株式取引所주식의 新株)이 재계의 [바로메-타]로서 시시각각으로 들어오는 세계의 정치경제의 변전을 東新시세가 반영한다.
뉴육(紐育,뉴욕)주식취인소에서 [스틸]주가 1불이 올다면 미국 경기가 좋다하야 東新도 올르고 불란서은행에서 금유출을 방지코저 일분리상(一分利上)을 하면 금본위위태(金本位危殆)를 염려하야 시세가 약해지고 중국서 왕정위(汪精衛)가 피-(被-)되었다는 전보를 받고는 일중관계를 걱정하여 떠러지고 예산편성에 증세(增稅)가 걱정된다하야 미황(迷徨:혼미하고 방황함)하고 생사(生絲)값이 반락되었다고 비관, 무역이 수출이 많고 수입이 적었다하야 낙관, 국내국외의 강약제재료(諸材料)가 착-(錯-)하야 뒤법석하는 가운데 東新株의 시세가 그것을 받어서 왔다갔다 하며 그다은으로 일반주에 급(及)하고 주식시세에 재료가 직입(織入)된 후에는 이 주식의 고하가 면사, 기미, 생사 기타 상품취인소 시세에 영향된다.
물론 그 상품상품에 한한 재료예(例)하면 기미에 있어서는 연사(年事)의 풍흉이라던가 면사에 있어서는 미면(米棉)등락, 생사에 있어서는 –상황이 절대재료이지만 일반경제에 관한 재료의 감수성은 이상과 같다.
조선사람은 주식(株式)과 멀고 많이 하기는 미두(米豆)
주식이란 그날 그날의 세계경제를 반영하는 것인 때문에 또 그 종류가 한둘이 아니오 계산도 복잡하고 주식취인에 대한 지식이 일반으로 서투루기 때문에 조선사람은 주식과 연이 멀다. 대정(大正) 8,9년 호경기시에 그야말로 아모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명치정(明治丁)에 가기만 하면 수난다는 바람에 와-들이밀리어 경취주 (京取株)를 사기만 하면 먹든 경험으로 조선사람들은 주식은 사기만 하면 부자되는것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에도 있을만치 어두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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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년대 초반에도 이처럼 기술적 분석을 통한 주식투자가 유행했다> | ||
사고파는말이 나왔으니 이 기회에 좀 이야기 하면 돈가지고 산다는 것은 알일이지만 물건(株式은 株式, 期米는 米)만 가지고 판다는 말이 되느냐 이상히 생각할 일이자 물건 가지지 안고 팔수있는 곳이 취인소 안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에 대한 것을 자세히 말하자면 책 한권이 될 터이니 이만 끄치고 하여간 주식이란 복잡한 것이라 주식시장에는 조선손님이 그리 많지 않고 그것도 대규모로 하는 사람이 드믈다.
그러나 미두는 조선사람과 친하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조선사람 경제적 -락(-落)의 본-(本-)의 하나가 미두시장이었다. 기미는 원악이 쌀을 매매하는 곡이라 쌀을 모를 사람이 없고 그 변동을 초(招)하는 재료가 첫째 그해의 연사풍흉(年事豊凶)에 달린것으로서 천수답이 많은 조선이라기후관계로 파란이 만장하야 소위 [천기상장(天氣相場)]이란 것이 굉장하며 그 다음으로 수급관게 재미(在米)관계 등 미(米) 자체에 관한 재료가 되고 그외 일반경제관계는 부재료가 되는만큼 쌍에 대하야서는 일반적으로 주식에 관하여서보다 지식이 풍부한 때문에 일확천금을 하랴고 미두장으로 몰린다.
그러면 일확천금하랴고 미두장으로 출입하는 친구들이 과연 성공하였느냐? 성공한 사람이 아주 없는 것이 아니오 지금도 금춘래(今春來) 인천서 성공한 조선청년이 있다고 소문이 높기는 하나 예전부터 망한 사람이 더 많다. 왜 망하느냐 망하는 사람을 개괄적으로 들어보면
1. 지금은 취인소를 유리히 이용하야 위험을 방지하고 득리(得利)까지라도 미곡상인이나 미생산자가 많으나 이런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몽상코 덤빈사람들이 아니니 논외로 하고 대개는 전부가 헛욕기(慾氣)만 가지고 덤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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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적 분석에 동원된 차트모습. 오늘날과 상당히 유사하다> | ||
2. 기미가 세계적 재료 일반경제재료에 비록 민감치 않다하나 신문이라도 정독하야 그날 그날 경제사정을 짐작이라도 하여야 하고 미(米)에 대한 연구가 있어냐 하겠는데 이것이 부족한 것.
3. 연구는 않고 음양설괘점육갑(陰陽說掛占六甲)을 떠들기 잘하고 섯투루게 괘선(罫線)으로 판단하야 장담하는 것이 통-(通-)인 것(괘선(罫線)이란 것은 오르고 나리느것을 일일히 표를 만드는 것인데 이 괘선이란것도 만드는 법이 한두가지가 아니오 전문적으로 연구하자면 일년이년가지고는 되지도 안고 또 괘선으로 추측한대로 반드시 시세가 고하되는것도 아니다.)
지금도 그러치만 예전에는 대부분이 타사업에 실패한 벌충을 하려는 사람, 남의 꾀임에 빠저 덤빈사람들도 과학적 지식을 구하기는커녕 손보면 볼수록 초조만 해가지고 욕기는 배가하야 ----으로 [마라손]하였으니 어찌 성공이 있겠는가?
성공(成功)의 비결(秘訣)은 없는가?
그러면 투기시장에 들어가서 성공할 비결은 없는가? 얼는딱 잘너말하라면 없다고 하는 것이 응당할것도 같으나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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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1930년대 일본 오사카 증시 모습> | ||
주식으로 말하면 상술(上述)과 같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나 경제계란 살인강도와 같은 돌발사가 없는것이다. 아조 없지는 아니하니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재계가 뒤법석이었던것 같은 일이 있기는 하다. 대체에 있어서 원만큼 연구조사하면 상식적으로 세계경제나 일본경제의 추이의 대세는 짐작이 아조 스지 안은것도 아니니 우선 이것이 절대 필요한것이오 시장내용을 잘 살피고 그 시세자체의 실정등을 보아가지고 투기보다는 투자적으로 하면 실패보다는 득리(得利)가 많을 것이나 이것은 소위 일확천금하러 덤비는 사람에게는 적용안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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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취인소(거래소) 메이지증권의 홍보문구로 이당시에도 고객본위라는 말이 들어가있어 지금과 별반 차이없는 마인드를 보여주고 있다> | ||
대판취인소에 소사(小使,심부름꾼)단이는 사람이 소사노릇하면서 혼자 꿍꿍이속으로 그날그날 시세를 보고 오늘은 얼마에 샀다. 오늘은 얼마에 팔었다고 책에다가 기입을 하고 손익을 혼자 계산하야 시세를 마치기를 십여년을 해오다가 인제는 틀님없이 시세를 마칠줄 안다는 자신이 슨 후에 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모은 돈을 가지고 실전에 착수하였는데 때마침 구주대전(歐洲大戰)이 일어나자 폭등을 고대로 마치어 거리(巨利)를 얻었다는 실증이 있거니와 이는 연구가 필요한 것을 증(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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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 수개 종목의 주가추이를 나타낸 희귀 차트로 조선총독부 사료이다> | ||
대판(大阪) 면사(綿絲)취인조합장은 모 잡지에 기서(寄書)하되 자기는 일본의 경기순환을 연구하야가지고 맨처음 주식에 투자하였다가 웬만큼 올느거던 이(利)를 보고 손을 끊고나서 그 다음은 상품을 사서 이(利)보고 상품이 떠러지기 시작할 지음해서는 부동산을 사서 호경기폭등시대에 거리(巨利)를 득코 불경기폭락시에도 주식, 상품, 부동산의 순서로 팔어서 세상은 불경기를 차탄(嗟歎:한숨지어 탄식함)하야 자기는 호경기에도 이(利)보고 불경기에도 이(利)보았다는 자랑을 한 글을 본일이 있다.
이렇게 성공들 하는 반면에 웃우웁고도 딱한 이야기도 있으니 대정(大正) 8년 호경기시에 의외의 거리(巨利)를 얻고나서는 주색(酒色)에 탐혹(耽惑)하야 뇌매독(腦梅毒)으로 비참한 최후까지 한 사람이 있었다. 이런 것은 예외로 문제삼을 것도 없으나 최근 실예를 들어가지고 주식판에서 여간해서는 일확천금하기가 어려웁다는 실증을 보이고저 한다.
동신(東新)이 금년 저가 6월 19일의 단기(短期) 131환7전에서 8월 중순까지 지긋지긋하게 130환대에 왕래(往來)하야 그 변동폭이 적었기 때문에 시장인에게 가장 실징나는 대보합시세가 계속됨을 한탄하다가 이태리와 [에디오피아]가 풍운이 급막해지자 민감한 신경을 가진 주계(株界)에서 가만히 있을가보냐? 伊-에開戰 호외(1935년10월)가 나가자 伊-에전(戰)으로 구주제 2차대전을 연상코 폭발되었다. 구주대전 때 대리(大利)를 본 경험으로 확대만 된다면 일본은 어부의 리를 득케 되리라 하야 지금까지 심-(沈-)튼 인기가 열광되어 그때부터 東新 2백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伊-에開戰에 대한 연맹의 태도, 특히 영불태도가 어떠한지 갈팡질팡하면서도 시세는 치닫기만 하야 166환대에까지(11월하순 북중자치호감과 연말고(高) 신춘고(高) 예상으로 178환에까지 올는 것은 나종일이오 이 이야기와는 관계가 없다) 올라서 6, 7월 보합가에서 30환고(高)이었는데 30환폭을 전부 이득한 사람이 몇치나 되었느냐가 문제다.
6, 7월 보합시 130환의 東新을 판 사람은 伊-에開戰을 떠들 때에 제가 올느면 얼마나 올르리라고 얏보고 버틔다가 대손(大損)을 볼 것은 물론이어니와 130환대서 산사람들도 지리한 보합에 실징이 나던판에 145,6환이 되니 올타 호기라 하야 약속빨리 조금 이(利)먹고 물너났다. 물너나기만 하였더면 좋을것을 급등되었으니 반락이 있으리라하야 145,6환에서 판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웬걸 시세는 그대로 뛰어 155,6환으로 폭등되고보니 처음 먹은 것은 토해내고도 해(害)본 사람이 많고 155,6환에서라도 샀더면 160환 이상에서 이(利)를 보았을 것을 155,6환이 기껏이라하야 판사람이 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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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증권사무 보는 모습. 조선총독부 사료임> | ||
그리하야 伊-에開戰에 의한 폭발로 30환의 전동폭(全動幅)을 그대로 이(利)본 사람은 명치정 주식판에 도대체 몇사람이 못된다한다. 왜 그리들 되었냐하면 말은 대포같이 컷스나 30환이나 올늘줄을 믿지 못하였고 또 시세란 쭉 우로 올느면 일굴(一屈)하고 일굴(一屈)후 우로가는 것이 상칙(常則)이오 괘선(罫線)같은 것을 보드라도 그렇게 한꺼번에 치다꺼리기가 쉬운일이 아닌 때문에 이런 때는 좀 경험이 있다는 소위 [군]은 대개가 실패가 많고 새로덤빈 [시로드]측이 우직하게 그대로 꾹 참어서 의외시세를 틀님없이 크게 먹게 되는 수가 있는 터이다.
부모처자(父母妻子) 이별(離別)코 알몸으로 덤비라
투기시장에서 기십만기백만의 자금이 없시 큰 성공을 이(利)보랴거던 사람노릇 해가면서 꿈꾸어서는 안된다. 부모처자를 생이별하고 알몸으로 제한몸이 되어 아모 거리낌없이 휘둥그라게한 후에 기십환이던지 기백환을 만들어가지고 발을들여 놋는데 그날부터는 아조 마음을 지독하게 먹어야한다.
부모처자까지 떼노는터이라 취인소 문전에서 돌벼개하고 세상을 떠날 최후의 비상한 장면까지 생각한 사람이라야 한다. 왜 그러야 하느냐하면 투기에는 끈기가 경(經)이 되고 배포큰 것이 위(緯)가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지독한 결심을 한 터이라 기십환기백환이 없어진대야 겁낼것이 없으니가 대담해지고 30환폭으로 올늘 때에도 소리(小利)에 탐이 없이 버틔고 버틔어 대리(大利)를 득할 가능성이 있는 까닭이다. 이말이 점잔치 안은 말갔지만 그만한 지독한 마음이 있어야만 성공하는 [페센테지]가 많겠다는 말이다.
그럴 용기없는 사람은 행예 투기적으로는 투기시장에 발을 들여노치 말나? 예를 다 들을 것은 없으나 조선취인소 금기 배당이 1할하고도 3분이란다. 취인소가 고율 배당하고 30여 취인원이 영업해가지고 이(利)보고 취인소사원, 각취인소원점원, 외교원 등이 무슨 돈으로 먹고 사는줄 아는가? 그나 그뿐이나 조선증권시장을 통하야 매년 적어도 수백만환이 동경, 대판으로 유출한다. 도대체 어데서 이 돈이 나느냐하면 일확천금하러 명치정 주식판으로 인천 미두판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이 바치는 돈인 것을 짐작하면 일확천금의 꿈도 깨어질 것 아니냐?
<자료 및 도움말 제공 = 증권연구가 위문복(하나대투증권 도곡지점 부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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