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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③ 창업주부터 신창재 회장까지 경영 '심플'

[50대기업 완벽 大대부] <1>교보생명-③총수家 집중 해부

이연춘 기자 | lyc@newsprime.co.kr | 2007.12.04 11:03:39

[프라임경제]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는 6형제 가운데 5남으로 태어났고, 슬하에도 4명의 자녀가 있어 가계는 단촐 하지 않다. 하지만 회사 경영과 관련해서 만큼은 매우 심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창업주 1세대

창업주와 그의 장남인 신창재 회장 외에는 일절 경영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혼인 관계 역시 소박하다는 게 재계 일각의 일반적 시각이다.

교보생명을 창업한 신용호 창립자는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6형제 중 다섯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한학자이자 애국지사였던 부친 신예범 옹의 영향으로 신 창업주의 맏형 신용국 씨는 영암에서 발생한 소작쟁의 항일농민운동의 주동자로 낙인 찍혀 투옥됐고, 셋째 형도 일본 도쿄에서 항일학생운동에 가담, 체포됐다.

부친과 형들의 항일운동의 여파로 신 창업주는 고향인 영암을 떠나 목포로 이사해야 했고, 신학문을 배우지 못하고 독학으로 한학을 공부해야 했다. 하지만 향학열과 애국애족의 정신을 억누를 수 없었던 그는 20세가 되던 1936년에 중국 만주로 건너간다. 이후 그는 만주 다롄, 베이징, 북만주 등 각지를 떠돌아다녔다.

베이징에서 광복을 맞은 그는 이듬해인 1946년 10년 만에 귀국했고, 이후 평생 동안 기업인의 길을 걸었다. 신 창업주는 1958년 8월에 대한교육보험(주)을 설립해 평생 동안 한국 보험시장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1980년에 각각 교보문고를 설립해 문화사업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기도 했다.

창업주의 동생인 신용희 씨는 목포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산업은행에 재직하다가 한국전쟁 후 신 창업주가 경영하던 익산의 한양직물 공장에서 전무이사로 재직하면서 형의 사업을 도왔다. 이후 1976년부터 교보생명의 경영에 직접 참여하여 30년 동안 부사장과 회장, 상담역을 두루 역임하며 1997년 퇴임하기까지 교보생명에서 큰 역할을 소화했다.

■창업주 직계 가족

1943년, 당시 나이 26세였던 신 창업주는 한국이 아닌 중국에서 사업을 크게 벌이다 귀국해 유순이 여사와 결혼한다. 신용호 창업주와 유순이 여사는 슬하에 신영애 신경애 신창재 신문재 등 4남매를 두고 있다. 신용호 창업주 자녀들의 혼인은 정략 결혼보다는 자녀들의 의견을 우선시 했다는 특징이 있다.

신용호 창업주의 장녀 신영애 씨는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였던 함병문 씨와 결혼했다. 이들은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신 씨는 창업주인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교보생명 지분으로 인해 매년 여성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차녀 신경애 씨는 법조인 박용상 씨와 인연을 맺었다. 경남 밀양 출신인 박용상 씨는 현재 현대중공업 사외이사로 재임하고 있으며, 박용상법률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서울대 법대에서 박사까지 마친 뒤 사법시험(8회)에 합격한 그는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고법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국회 공직자윤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신용호 창업주로부터 경영권을 이어받은 신창재 회장의 전직은 의사다.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전문의 출신이다. 부인 정혜원 씨와의 사이에서 2남을 둔 신 회장이 회사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은 1996년부터다. 그는 1978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서울대 의대에서 산부인과 전문의로 교수와 진료 활동에 전념했다.

신 회장은 1993년에 부친의 요청에 따라 교보생명 산하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맡았다. 1996년에는 교보생명 부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그 동안 몸담았던 의사 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했으며 2000년 5월 교보생명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취임 이후 변화혁신을 선포한다. 외형성장보다는 내실경영에 주력하며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교보생명을 총자산 45조원, 매년 3,000~4,000억대의 수익을 창출하는 탄탄한 금융사로 키워놓았다.

신창재 회장의 부인 정혜원 씨는 남편 신 회장으로부터 사회공헌사업을 해보라는 제의를 받고 2004년 4월 성매매 피해여성 보호단체를 지원하는 봄빛여성재단을 창립,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순전히 남편 신 회장의 사재로 시작한 사회공헌 사업이다.

본지 취재에 한사코 거부한 정 이사장은 사회의 왜곡된 시각과 멸시속에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위해 여러 가지 지원사업과 연구사업을 하고 있다는 게 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재계 총수의 자택은?

   

신창재 회장의 청운동 빌라 자택

보편적으로 재계 총수들은 강남보다 강북지역을 더 선호한다. 강남지역이 신흥재벌의 터가 되고 있다면 강북지역은 대를 잇는 재벌가의 터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신창재 회장의 집은 어디일까. 그리고 공시가격은 얼마나 될까.

과거 신 회장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에 살다가 지난 2003년 청운동의 빌라로 주소를 옮겼다. 빌라라고는 하지만 독립성이 보장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신 회장의 자택은 5억3,000여만원 정도한다는 게 인근 부동산 관계자의 말이다.

<다음에는 ④교보생명-공익재단 현황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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