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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화가 열전]역사주제화 대가 전순용

 

박광선 기자 | kspark@newsprime.co.kr | 2008.01.17 17:06:10
[프라임경제]조선혁명박물관 전속미술가인 전순용 화백. 그는 주로 박물관에서 제기되는 역사주제화를 조선화로 그려온 화가다.
   
 
  전순용 대동문  
 


전문가들은 전화백의 조선화 작품에 대해 조선화의 전통적인 필치를 일정하게 살려나갔다고 평가하고 있다. 꾸준히 연마해온 조선화기법과 그것을 창작에 구현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작품에 배여 있다고 한다.

전화백은 함경남도 함주군 주북면 부민리에서 출생했으며 38년 주북소학교, 41년에 함남상업학교를 마치고 일본 제국미술학교 유화과에 들어갔으나 44년에 귀향했다. 해방 이후 함흥여자중학교와 함흥영생여자중학교에서 미술교원으로 1년간 있다가 조선미술가동맹 함경남도 위원회 소속으로 1953년까지 창작활동을 했다.

당시 창작한 작품이 유화 용광로(46년), 제련공장 풍경(46년), 실켜는 제사공(47년), 보일러공(47년 50호), 주복풍경(48년 40호) 등이다. 이 작품들은 당시 사회에서 일어난 새로운 변화를 그린 것이다.
   
 
  최제남 봄비 내리는 대동문   
 


전화백은 53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조선미술가동맹 함경남도 위원회사업을 책임지게 되었다. 당시 그린 그림이 유화 흥남비료공장의 심장 변류기 복규(53년 650호), 밀림의 영웅(55년 100호), 여성용접공(57년 20호), 흥남비료공장건설(57년 20호), 농촌을 건설하는 사람들(58년 100호) 등이다. 이들 작품 가운데 농촌을 건설하는 사람들(58년 100호)은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60년 조선혁명박물관 전속미술가로 발탁된 그는 주로 박물관에서 제기되는 역사주제화를 조선화로 그리면서 미술전람회에도 빠짐없이 창작품을 내놓았다. 10여 년간 유화를 그렸으며, 조선화로 바꾼 후 그린 작품 가운데 모판을 가꾸다(50호), 방직공(30호), 내가에서(8호)는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리춘룡 대동문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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