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대림의 특징 중 하나는 단연 한우물 경영을 손꼽을 수 있다. 창업주 이재준과 이준용 명예회장은 곁눈질하지 않고 한 우물을 파는 고집쟁이로 건설에서 벗어나지 않고 지금의 대림을 건설명가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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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창업주 3세이자 이준용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해욱 부사장이 대림의 주력사업으로 떠오른 유화부문을 총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설과 유화부문의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몸집을 확대하는데 전력투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풍림산업과 같은 뿌리
대림의 태동은 1939년 부평에서 목재와 건자재상으로 문을 연 부림상회에서 시작된다. 초기 부림상회는 이재준 창업주와 그의 고종 사촌형인 이석구 전 대림산업 사장, 이석구의 매제 원장희 등 3명이 부림상회의 이끈 주인공들이다. 이석구는 풍림산업 이필웅 회장의 부친으로 대림과 풍림의 뿌리는 부림상회로 결국 같다.
원목을 개발 사세를 확장하던 부림상회는 1947년 건설업에 진출하면서 지금의 대림산업으로 바뀌게 됐다. 이후 건설업은 주업종으로 자리 잡으며 한국전쟁 피난민 수용소를 짓는 등 군 시설 공사를 맡기도 했다.
이후 58년에는 청계천 복구공사와 청계고가도로 건설, 경부고속도로, 소양강댐건설 등 굵직한 공사를 진행하며 대림의 색깔을 찾아갔다. 66년에는 베트남 진출로 국내 최초 해외건설 시장을 개척한 이래 중동건설붐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 창업주는 다른 재벌그룹 총수들과는 달리 단촐하게 두 아들만 뒀다. 때문에 후계자 다툼도 없이 순리적으로 승계작업을 끝냈다. 창업주 2세인 이준용 명예회장은 순탄하게 경영자 수업을 쌓아온 편이다. 아버지 밑에서 정미소 일을 배웠던 이 창업주와는 달리 한껏 교육적 혜택을 입었다.
2006년 12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현재 명예회장직만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명예회장은 그룹 계열사의 최고 정점에 있는 대림코퍼레이션 지분을 통해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놓고 있지는 않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퇴진에 대해 창업주 3세이자 이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해욱 대림산업 유화부문 부사장에게 단계적으로 경영권 대물림을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명예회장은 경기고, 서울대 상대를 거쳐 미국 덴버대에서 통계학을 전공한 뒤 지난 1966년 대림산업에 입사, 부친인 고 이재준 명예회장을 도와 오늘날의 대림을 일궈냈다.
■이재준-이준용-이해욱 경영권 승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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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용 명예회장 | ||
이런 이 부사장의 승계 작업은 그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을 보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는 그룹 계열사간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대림코퍼레이션 지분은 없는 대신 대림산업 0.47%(보통주)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삼호에 대해서도 1.76%를 갖고 있다. 그는 그룹내 계열사간 출자 고리가 연결되지 않은 계열사인 해운물류업체인 대림H&L의 지분을 전량 보유하고 있다. 즉 이 부사장의 개인기업이나 마찬가지.
이뿐만이 아니다. 이 부사장은 대림I&S의 지분 53.71%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있다. 대림I&S는 그룹 계열사들의 시스템통합(SI) 및 정보시스템관리(SM) 등을 맡고 있는 곳이다. 최근 재계 2∼3세들의 경영권 승계의 전초전으로 IT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분위기에 이 부사장도 동참하는 모양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준용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것을 두고 경영권 승계가 본격화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평소 이 명예회장이 '40세가 돼야 최고 경영을 맡고 70세가 되면 물러난다'는 지론을 강조한 만큼 경영 승계 포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대림그룹은 현재 보다 더 원칙에 충실하고 깨끗한 기업상을 구현한다는 각오로 세계적 건설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창조와 도전정신을 불태우고 있다. ‘지식경영’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해 가깝게는 100년, 멀게는 1000년 기업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에는 <대림> ②총수家 집중 해부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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