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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주총장에서 사라지는 것들

 

이연춘 기자 | lyc@newsprime.co.kr | 2008.03.25 15:18:31

[프라임경제] ‘주총의 계절’ 3월이 저물고 있다. 한 회기를 마무리하고 또 새로 시작하는 주주총회(이하 주총)는 기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매듭의 시간’이다.

주주들이 참여한 가운데 경영진의 능력이 평가되고, 신임 여부가 결정된다. 또 기업의 굵직한 경영방향이 정해지는 중차대한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총을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지극히 형식적이란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는 얘기다. 주총 현장에 주주보다 회사 직원들이 더 많이 참석하는 흔한 모습은 이제 별로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주총장은 주주가 참여하는 자리가 아니라 회사 오너를 위한 방패막이 행사 같이 보이기도 한다.

주총은 주주들로 구성된 주식회사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다. 때문에 주총을 앞둔 경영진은 늘 긴장하게 마련이다. 이런 주총 현장에 기업 측이 동원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리들이 입 바른 소리하는 주주들의 목소리를 덮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곤 한다.

이들은 회사 측의 진행에 "원안대로 처리하자" "동의한다" "재청한다"는 회사 우호적 고함을 연이어 쏟아내며 회의진행의 걸림돌을 없애는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지난 3월 21일 유가증권시장 249개사, 코스닥시장 290개사 등 총 539개의 12월 결산법인들이 일제히 주총을 개최했다. ‘슈퍼주총데이’로 불렸던 이날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지만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상장기업 대주주의 바람(?)대로 별 사고 없이 거의 모든 주총이 마무리됐다.

A사 주총장, “그대로 처리하자”는 주도적인 발언에 참석자들이 “동의”와 “재청”을 연이어 쏟아냈다. 수많은 안건들이 일사천리로 의결됐다. 어떤 참석자는 “공산당 회의 같다”며 옆사람과 낄낄댔다. 40여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기업의 1년 농사가 단 한 건의 불만도 없이 마무리 됐다.

주주들 눈에는 A사의 경영이 실제로 양호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고품 ‘땡처리’ 하듯 주총 전 과정을 순식간에 넘겨버리는 이 날 모습을 보면서, 주주들이 과연 A 기업에 대한 평가나 비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들었다.

이런 장면을 해마다 지켜보자니, ‘기업들이 주총일을 어느 특정일로 짜맞춘 듯 잡아둔 것은 언론과 세인들의 관심을 분산시키려는 작전 같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주총일이 특정일에 집중되면 나름 유리한 측면이 있다. 눈엣가시 같은 소액주주운동의 집중 타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데다 언론의 집중적 관심에서도 살짝 비껴나는 효과도 있다. 게다가 주주들의 불참률을 높일 수도 있다.

지난 3월 14일 기자가 참석했던 현대자동차 주총 현장은 21일 일제히 벌어졌던 다른 주총장의 상황과 다른 점이 있었다. 단 1명의 소액주주 때문에 달라보였다. 주총장에서 이 소액주주는 “이의 있습니다”며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곤 주총 진행자에게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지적하면서 진행에 제동을 걸었다.

예전 같으면 여느 주총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이 같은 모습은 갈수록 사라지는 추세다. 현대자동차 주총에서 단 한 명이 보였던 소액주주의 ‘입바른 소리’가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당시 소액주주는 "직원을 대거 동원하는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며 "많은 기업들이 같은 날에 주총을 여는 것은 개인 주주들의 참석을 막기 위한 일종의 담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내 다른 주주 참석자들로부터 저지를 당했다. 소액주주는 더 이상의 발언을 포기하고 씁쓸하게 퇴장했다. 퇴장한 소액주주는 주총의 진행을 훼방 놓았다는 비난을 받으며 주총꾼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주총장에서 주주들의 비판 목소리가 줄어들고 있는 현상은 아직은 긍정적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구석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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