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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맛뵈기’ 다음엔 ‘칼바람’

2008 주총 주인공 ‘국민연금’의 힘, 타기관 확산 전망

이연춘 기자 | lyc@newsprime.co.kr | 2008.03.26 08:40:05

[프라임경제]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최근 행보에 재계가 술렁이고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주총에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과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을 상대로 ‘경영에서 손을 떼라’고 강력 주장하는 등 기업 경영에 깊숙이 개입할 태세를 보였다. 예전엔 전혀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국민연금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정부 산하기관인 국민연금은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로서의 위상이 있지만, 그동안 기존 경영진에 손을 들어주는 ‘백기사’ 역할에 충실했던 터라 국민연금의 이번 ‘일갈’은 재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재계는 국민연금의 ‘도발’이 단발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재계에선 “향후 대기업 주총에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주역이 될 것”이라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연금이 주총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극하는 중이다.

의결권행사 세부기준 마련 잘 돼 있어 의결권 적극 참여 가능 
주식 2006년 11%→2012년 20%대 주식보유액 124조원 급증
 

   
 
  ▲지난 3월 21일 현대자동차 주주총회 현장. 국민연금은 주총이 열리기 며칠 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도덕성을 문제 삼으며 퇴진을 요구해 재계를 술렁이게 했지만, 현대차 주총 당일 행사장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특정 오너 경영인 퇴진을 주장한 뒤 언론으로 집중조명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지침에 따라 원칙대로 내린 결정이다. 다른 뜻은 없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이번 ‘주총의 계절’ 도중, 의결권 행사 지침에 따라 투자하는 해당 기업 오너 경영자 중 배임과 횡령 등으로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고 주주 권익을 훼손한 자는 경영권을 쥘 자격이 없다고 강력하게 피력했다. 국내 최대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이 같은 입장은 ‘부의 대물림’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국내 대기업 총수들을 겨냥, 공개적으로 경종을 울린 격이다.

◆ 지분 10% 이상 10곳

재계는 국민연금의 결정이 해당 기업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재벌총수의 경영인의 도덕성을 운운하며 자질 문제를 도마 위에 올리기 시작한 터라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동안 재계 오너 경영인에 대한 공세는 주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나 일부 진보 정치세력이 담당했지만, 이처럼 정부 산하 기관까지 나서는 바람에 재계는 적잖이 당혹스러워 했다. 

하지만 올해 재계 주총에 국민연금의 ‘반대 결정’은 해당 기업에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국민연금은 기존 예상과는 다르게 주총에 참석하지 않았고, 퇴진 대상이었던 정 회장과 박 회장의 이사 선임 안건은 별탈없이 무사히 통과됐다.

그럼에도 이번 국민연금의 행보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앞으로 국민연금의 눈치를 더 많이 볼 수밖에 없게 됐다. 때문에 국민연금의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의 영향력 아래 있는 기업은 적지 않다. 모두 500여곳이다. 그 중 국민연금이 현재 1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만 해도 ▲LS산전 14.99% ▲한솔제지 14.19% ▲에스엘 12.16% ▲성신양회 12.16% ▲LG패션 11.48% ▲LG상사 11.05% ▲세방 10.91% ▲S&TC 10.61% ▲인지컨트롤스 10.61% ▲전북은행 10.61% ▲롯데삼강 10.56% ▲한국제지 10.47% ▲Fnc코오롱 10.41% 등 10곳이 넘는다.

향후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는 재계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번 주총에선 맛뵈기로 존재감을 알린 다음, 추후 주총 등 의결권 행사 때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관측이다.    

국민연금의 주총 참석횟수에서도 태도 변화가 읽힌다. ▲2002년 138회(653건) ▲2003년 164회(782건) ▲2004년 348회(1,145건) ▲2005년 317회(1,395건) 등으로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반대 의견을 낸 수와 비중을 살펴보면, ▲2002년 8건(1.2%) ▲2003년 15건(1.9%) ▲2004년 16건(1.4%) ▲2005년 38건(2.7%) ▲2006년 70건(3.73%) 등으로 급증했다.

적극적인 투자자의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최근 들어 기업 지배구조 투명화를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선 터라 해당 대기업 입장에선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예전처럼 회사 돈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비리 사실이 적발됐다간 제 아무리 그룹 오너라고 해도 국민연금이 적극 나서서 단번에 경영권을 빼앗는 일까지 벌어질 수 있을 것 같다. 

◆ 국민연금의 ‘도발’…긍정 반응

국민연금의 태도 변화는 국민연금 하나의 문제로 끝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국민연금은 다른 기관투자가들의 주총 의사 결정 참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민연금의 행보를 발판 삼아 타 기관투자자들도 비판적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일부 시민단체에도서 기관투자가들의 경영 견제 기능을 활성화하고 국내 기업들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국민연금과 같은 사례가 지속적으로 많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 세부 기준이 잘 마련해 두고 있기 때문에 향후 보다 적극적으로 주주 의결권 참여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가 구성돼 있다. 여기에서 원칙과 세부 기준을 정해주고, 찬성 또는 반대를 판단하기 어려운 사항에 대해서는 판단을 해주기 때문에 원칙이 세워지면 이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한편, 국민연금은 2006년 11%에 불과했던 국내주식 비중을 2012년까지 20%대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2012년 국민연금의 주식 보유 금액은 124조원으로 늘어난다. 이를 감안하면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국민연금에 눈 밖에 났다간 오너를 포함한 경영진 누구라도 혹독한 책임추궁을 당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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