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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옵션 난제' 누가 풀까?

[40주년 포스코 ‘빛과 그림자’] ①'설립정신' 박태준의 회초리

김동현 기자 | pen1969 | 2008.04.02 11:07:03

[프라임경제] 1968년 포항 영일만 모래밭에서 탄생한 포스코가 우여곡절의 세월을 뒤로 하고 ‘불혹’에 접어들었다. 포스코는 어떤 유혹과 외풍에도 든든하게 앞길을 갈 것처럼 건실하게 컸다. 포스코는 지난 40년 동안 매년 10% 이상 성장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매년 10% 이상 지속 성장해 매출 100조원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다. 대한민국을 세계 철강 강국 반열에 올린 포스코의 창업과 성장 과정은 매우 감동적이다. 가난에서 벗어나자는 국민 염원을 가슴에 안고, 그리고 아무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고개 저었던 때, ‘사명감’ 하나로 뛰어들어 성공시킨 과업이다. 포스코 40년이 남긴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지난 1일 경북 포항시 포스코 본사에서 열린 포스코 창립 40주년 기념일 현장, 이 날 주인공은 단연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었다. 40년 전, 민족 숙원 사업으로 시작된 포항제철소 건립. 강철 같은 그의 리더십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포스코가 없었을는지 모른다. 

자본 기술 인적자원, 뭐 하나 딱히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던 그 시절, 경제 부흥에 목말라 있던 국민 모두의 염원을 등에 업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만들어낸 포항 땅 제철소 곳곳엔 ‘민족기업 혼’이 스며 있었다. 그래서 이 기업의 창립과 성장 과정은 감동적이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제철소 건립 당시 “선조의 피값으로 짓는다”고 했다. 또 “실패하면 모두가 우향후 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어 속죄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와 초창기 포스코맨들은 이런 정신 무장으로 불가능에 도전했다. 사무직은 물론 임원까지 공장 건설 현장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그리고 1973년 6월 9일 제철소 건립 5년여 만에 열연공장에서 첫 출선의 ‘기적’이 일어났다.

포항제철소 건립 10년 후부터 포스코는 국제적인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1978년엔 이런 일이 있었다. 중국 공산당 통치자 등소평이 일본의 기미츠제철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당시 신일철 요시히로 회장에게 “중국에도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등소평은 요시히로 회장으로부터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느냐”는 답을 들어야 했다.

포항제철이 오늘의 포스코로 성장한 데는 수많은 ‘포철맨’들의 의지와 땀과 희생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들의 그 중심에는 ‘제철보국(製鐵報國)’라는 박 명예회장의 기업 정신이 버티고 있었다.

때문에 오늘날 포스코와 박태준은 하나의 혼을 가진 ‘동체’로 이해된다. 박 명예회장에게 포스코는 ‘제철보국’의 사명감이 현실로 구현된 존재다.

그는 1992년 10월 3일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기 이틀 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무덤을 찾았다. 그리고 “각하의 명을 받은 지 25년만에 포항제철 건설의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포스코 경영일선에서 떠났을 정도로 사명감이 대단했다.  

포스코가 민영기업으로 탈바꿈하긴 했어도 그에게 포스코는 여전히 민족 사명감으로 세워진 민족 기업이다. 그 정신 때문에 오늘날 포스코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포스코에 대한 박 명예회장의 관심과 애착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포스코에 대한 그의 질책은 ‘앞선 늙은 최고경영자의 잔소리’ 정도로 치부될 수 없다.    

박 명예회장은 얼마 전 전현직 임원들을 포스코의 설립정신에 빗대 심하게 나무랐다. 질타의 표현 강도가 높았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을 이해하는 이들에겐 당연한 질책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으로 보인다.   

박 명예회장은 지난 1월 31일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1년부터 5년간 임원들을 대상으로 시행됐던 포스코의 스톡옵션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총을 앞 둔 시점이라는 중요한 의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박 명예회장이 일부 현직 임원들을 직접 겨냥한 질타라는 점 때문에 일각에선 “경영진 교체 바람과 연관 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박 명예회장은 “임원 스톡옵션제는 국민기업 포스코의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준 사건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 명예회장은 특히 “포스코의 스톡옵션제는 제철보국의 창업정신을 배반하고 정면 도전한 사건”이라며 “아직도 스톡옵션 도입이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임원이 있다면 당장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박 명예회장이 이토록 스톡옵션제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낸 이유는 인터뷰에서도 정확히 드러나 듯 스톡옵션제를 ‘제철보국의 창업정신’에 반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박태준 = 포스코 창업정신’의 등식이 상식처럼 통하는 포스코 사회에서 “창업정신을 배반하고 정면 도전”하는 것은 ‘박태준을 배반하고 박태준에게 정면 도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포스코의 스톡옵션제는 지난 2001년 유상부 전 회장 체제에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도입됐다. 그리고 2006년 폐지됐다. 이 5년간 유 전 회장은 10만주, 임원 80여 명은 모두 70만주 가량의 스톡옵션을 받았다.

당시 임원들이 받은 스톡옵션의 행사가격은 주당 10만∼22만원 수준. 포스코 주가를 50만원대로 감안하면 이들이 취득한 이득은 수천억원대다. 개인별로도 수백억원씩 돌아갈만한 이득이다. 

박 명예회장은 임원들에게 주어진 이 같은 이득이 ‘말도 안 되는 불합리’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그의 ‘꾸중’은 포스코를 매우 긴장시켰다. 현 이구택 회장 역시 스톡옵션을 받았기 때문이다.

박 명예회장의 발언을 전제로 한다면 이 회장도 ‘창업정신을 배반한 대열’에 끼어있는 셈이다. 또 행여 ‘스톡옵션 도입이 정당했다’고 주장한다면 박 명예회장에겐 당장 사라져야 하는’ 제거 대상이 된다.
 
포스코 홍보실 관계자는 포스코의 당시 스톡옵션에 대해 “2000년 민영화 이후 경영 활성화와 성과 보상을 위해 도입된 것이지만 나중에 회사경영이 안정되고 나서 스톡옵션제는 자연스럽게 폐지됐다”면서 “스톡옵션제가 포스코에 도입된 것은 당시의 경영상황과 시대적인 그런 문제가 감안돼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홍보실 입장은 듣기에 따라선 당시의 스톡옵션제 도입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듣는 각도에 따라 정당성을 이야기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포스코의 살아있는 ‘설립 정신’ 박 명예회장과 포스코의 미래를 끌어갈 현직 임원들 사이에는 이렇듯 ‘스톡옵션’이라는 골치 아픈 딜레마가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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