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AI 콜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해 특정 호응어나 공감어를 쓰지 않으면 감점을 매긴다고 들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필수 안내 사항을 읊듯 "네, 그러셨군요. 많이 불편하셨겠어요.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문장을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그래서 그런지 '고차원 공감' 강의를 해달라는 의뢰도 많이 받는다. 예전에 친절한 상담을 위해 '다채로운 맞장구, 색다른 호응어'를 달달 외우도록 시킨 것처럼 '고차원 공감'을 훈련시키고 싶어 하는 취지는 알겠지만, 고차원 공감은 스킬 훈련으로 되는 게 아니다.
AI조차 실시간으로 그럴듯한 위로 문구를 생성해 내는 시대에 영혼 없는 기계적 공감은 고객을 지루하게 만들 뿐이다. 다채로운 응대어 구절을 머리로 암기한다고 해서 진짜 공감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고차원 공감은 기계적인 리액션이 아니라 고객의 입장을 깊이 헤아리는 인식의 전환이며, 머리로 궁리하는 멘트가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결과물이다.
드러나는 말을 그대로 복창하고 고객의 감정을 단순한 언어로 표현해 주는 것이 '기본 공감'이라면, '고차원 공감'은 그보다 훨씬 심오한 영역이다. 단순히 겉으로 표현된 기분만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간절한 바람과 두려움까지 헤아리는 작업이다.
상담 분야의 거장 버지니아 사티어는 '아이스버그(빙산) 모델'을 제시하며, 보이는 것은 일부이고 진짜 원인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것에 있다고 했다. 실제 빙산도 수면 위에는 약 10~20%만 보이고 나머지 80~90%는 물속에 잠겨 있듯이, 인간도 겉으로 드러난 행동 뒤에 훨씬 더 큰 내면 구조가 숨어 있다는 비유다.
고차원 공감은 이처럼 고객의 겉마음 이면에 숨겨진 거대한 속마음을 헤아리는 일이다. 분노와 짜증이라는 표면적 감정 아래에는 결핍된 욕구, 두려움과 상처,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겉으로 화를 내지만 그 아래에는 무시당했다는 느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실패에 대한 두려움, 오래된 상처가 켜켜이 쌓여 있다는 것이다.
"직장에 다 이상한 사람들만 있어"라고 불평하는 동료의 본심은 좀 더 안전하게 속을 터놓고 대화할 사람을 원한다는 욕구가 깃들어 있고, "제도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부하 직원의 내면에는 좀 더 현실적인 제도로 일을 잘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숨겨져 있다.
인간의 마음 안에는 두려움만큼이나 사랑이 있다. 어긋난 사랑이 두려움으로 발현되었을 뿐이다. 고차원 공감은 이러한 고객의 겉마음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마음을 알아차려주고 적확한 언어로 명명해주는 일이다.
말의 뉘앙스, 반응의 속도, 대화 사이에 흐르는 호흡 등을 읽고 깊이있게 헤아리는 일이다. 고객조차 미처 몰랐던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주는 일이다.
고차원 공감을 위해서는 '선한 이 분이 이토록 화를 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라는 게 뭘까? 무엇이 두려운 걸까?'를 궁금해하는 따뜻한 호기심이 필요하다.
더불어 고객의 감정은 고정돼 있지 않다는 점을 믿고, 흥분한 고객의 페이스에 잠시 맞춰 들어갔다가도 내 호흡을 고르며 차분하게 고객을 리드해야 한다. 고객에게 주파수를 맞추되, 그 감정의 늪에 함께 빠져버려서는 안 된다. 그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중심이 있어야 비로소 상대를 구하기 위한 밧줄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지식을 많이 쌓으면 지혜가 저절로 얻어지는 줄 착각한다. 하지만 지식과 지혜는 별개의 문제다. 특히 고차원 공감은 지식이 많을 때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모든 문제를 지식으로 해결하려 들면, 상대와 주파수를 맞추는 직관이 힘을 잃기 때문이다.
기본 공감은 2등이 1등을 따라잡기 위해 기술을 암기하듯 연습하면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고차원 공감은 흉내 내고 암기해서 될 일이 아니다. 경험으로 감각하고 터득하며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고차원 공감은 과거의 방식처럼 주입식으로 가르칠 수 없다. 내 안의 조급함이나 판단하려는 습관 등 고차원 공감을 방해하는 내면의 저항과 장애를 발견하고 치워내는 지난한 마음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지윤정 (윌토피아 대표/ 성신여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