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상장폐지 칼바람'에 공개매수 급증…"사후 약방문 대신 상장 문턱 높여야"

"우량기업 선의의 피해 우려…근본적 고민이 필요한 시기"

박기훈 기자 | pkh@newsprime.co.kr | 2026.06.29 18:01:00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로 지적받아왔던 '좀비 기업'들의 퇴출이 임박했다. 금융당국은 내달 1일부터 혁신기업의 자금 조달은 돕되 부실기업은 신속하고 엄정하게 퇴출하는전면적인 전환을 시작한다. ⓒ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프라임경제]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로 지적받아왔던 '좀비 기업'들의 퇴출이 임박했다. 금융당국은 내달 1일부터 혁신기업의 자금 조달은 돕되 부실기업은 신속하고 엄정하게 퇴출하는 '다산다사(多産多死)' 구조로의 전면적인 전환을 시작한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우량 기업의 선의의 피해와 소액주주의 손실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단순히 퇴출 기준을 높이는 것을 넘어 상장 심사 자체를 강화하는 '소산소사(少産少死)'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 상장폐지 요건, 무엇이 달라지나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지난 2월12일 '부실기업 신속·엄정 퇴출을 위한 상장폐지 개혁방안'을 전격 발표했다. 이후 4월 두 차례의 의견수렴을 거친 한국거래소의 상장규정 개정안은 5월13일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최종 승인되며 제도적 채비를 마쳤다. 

당장 7월1일부터 적용되는 이번 개정안은 코스피(KOSPI) 및 코스닥(KOSDAQ) 시장의 4대 상장폐지 요건을 대폭 강화하거나 신설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시가총액 요건의 상향조정 조기화다.

원래 내년 1월 도입 예정이었던 '코스피 300억원, 코스닥 200억원' 기준이 반년 앞당겨 시행된다. 나아가 2028년 적용 예정이었던 '코스피 500억원, 코스닥 300억원' 기준 역시 내년 1월1일로 1년 조기 적용된다.

세부 적용 방식도 깐깐해졌다. 시가총액 미달로 관리종목에 지정된 후, 기존에는 90거래일 중 '연속 10거래일 및 누적 30거래일'만 기준을 상회하면 상장폐지를 면할 수 있었으나, 개선 후에는 '연속 45거래일' 동안 기준을 상회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주가 1000원 미만의 이른바 '동전주' 퇴출 요건도 신설됐다.

시가총액 요건과 동일하게 30거래일 연속 주가 1000원 미만 시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며, 이후 90거래일 동안 연속 45거래일 이상 1000원선을 회복하지 못하면 최종 상장폐지 처리된다.

기업들이 꼼수로 주식병합이나 감자를 통해 주가를 끌어올려 요건을 우회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동전주 관리종목 지정 이후 90거래일 내 추가 감자나 10대 1을 초과하는 병합을 사실상 금지하고 즉시 상장폐지 사유로 규정했다.

이 외에도 사업연도 말 기준에만 적용되던 '완전자본잠식' 요건이 '반기 기준'으로 확대 추가돼 올헤 6월 말 반기보고서부터 기업의 계속성 등을 묻는 실질심사 요건으로 작용한다. 또한 공시위반에 따른 상장폐지 기준 벌점도 기존 누적 15점에서 10점으로 대폭 강화되며, 중대하고 고의적인 위반은 단 한 번만 적발되어도 곧바로 상폐 심사대에 오르게 된다.

◆ 발등에 불 떨어졌다…상폐 목적 공개매수 '급증'

금융당국의 강력한 퇴출 의지가 가시화되면서, 시장에서는 이미 선제적 이탈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엄격해진 규제의 잣대를 맞추느니 차라리 자진해서 시장을 떠나겠다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올해 연초부터 29일까지 총 13개사가 공개매수를 실시했으며, 이 중 무려 6개사가 '상장폐지'를 뚜렷한 목적으로 공시했다. 이는 2025년 상반기 전체 공개매수 건수(10건)와 상폐 목적 공개매수 건수(4건)를 모두 웃도는 수치다.

특히 상장폐지 개혁방안 시행을 이틀 앞둔 29일 하루에만 D사와 G사 등 2개 회사가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는 규제 시행 전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기업들의 다급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강경 드라이브에 대해 부실기업 퇴출이라는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다산다사' 기조가 불러올 예기치 않은 부작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챗GPT 생성 이미지.


◆ '우량 기업 덮치는 '다산다사'의 그늘

금융당국의 강경 드라이브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실기업 퇴출이라는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다산다사(多産多死)' 기조가 불러올 예기치 않은 부작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관련해 엄수진 한화투자증권의 연구원은 상장 유지 요건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맹점을 지적했다. 평상시 수익 창출력이 건실하고 성장 잠재력이 충분한 우량 기업조차 일시적인 억울함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시적인 업황 악화나 천재지변 등으로 재무상태나 시가총액이 '잠시' 훼손돼 퇴출 당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며 "실제로 기업이 상장폐지 위기에 몰릴 경우 그 피해는 다방면으로 확산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가 하락은 물론 주식의 환금성이 상실되면서 소액주주들이 직접적인 금전적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며 "나아가 해당 기업과 거래하는 공급업체나 채권자들이 상폐 리스크를 이유로 일제히 대금 지급과 자금 상환을 압박할 경우, 멀쩡했던 기업조차 단기간에 유동성 경색에 빠져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 진정한 개혁은 '출구' 아닌 '입구'에서

결국 자본시장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후 약방문 격인 '퇴출 강화'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미 병든 기업을 도려내는 수술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건강한 기업만이 시장에 발을 들일 수 있도록 방역망 자체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의미다.

엄 연구원은 "부실기업을 솎아내고자 상폐 요건을 손보기 보다는, 최초로 상장할 때 더 면밀하고 엄격한 평가를 실시함으로써 신규 상장의 문턱을 높이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접근법"이라고 진단했다.

현행 제도에서도 상장 시 자기자본, 매출액 등 형식적 요건과 함께 내부통제제도, 기업지배구조,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기업의 계속성 등 질적 요건을 심사하고 있지만, 이 질적 평가의 허들을 지금보다 훨씬 더 높게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은 국가 경제의 혈맥이자 기업 성장의 요람이다. 무분별하게 상장을 허용하고 뒤늦게 칼날을 휘두르는 다산다사(多産多死)의 생태계는 필연적으로 투자자의 상처와 시장의 피로감을 수반한다. 처음부터 경쟁력이 뛰어나고 재무적 펀더멘털이 건실한 기업을 엄격히 가려내 상장시키는 소산소사(少産少死) 상장시장으로의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입구를 철저히 통제한다면, 훗날 시가총액 부족이나 공시 부실로 시장을 어지럽히며 퇴출당하는 촌극의 발생 가능성 자체를 선제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하반기, 자본시장에 불어닥친 상장폐지 칼바람이 단순한 '폭풍'을 넘어 시장의 질적 성장을 견인하는 진정한 '개혁'으로 이어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