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돈을 냈을 때 그 가치를 기대 이상으로 해줘야 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제네시스의 럭셔리를 설명하며 꺼낸 기준이다. 가격이 높다고 럭셔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며, 차를 타는 사람이 얼마나 만족하고 자신의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제네시스가 공개한 'GV90'에는 이런 정의가 가장 짙게 담겼다. 브랜드 최초의 초대형 플래그십 전동화 SUV라는 위치에 맞춰 새로운 플랫폼부터 차체 구조, 전동화 성능, 실내 공간과 사용자 경험까지 폭넓게 손봤다.

왼쪽부터 제네시스 GV90 네오룬, GV90 네오룬 퍼스트 에디션, GV90. ⓒ 제네시스 브랜드
특히 GV90는 제네시스 출범 10년 이후의 방향을 보여주는 모델이라는 성격도 갖는다. 제네시스는 GV90를 '브랜드의 새로운 10년을 여는 플래그십'으로 규정했다. 지난 10년 동안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 외연을 넓혔다면, 앞으로는 제네시스가 생각하는 럭셔리의 기준을 제품 안에서 얼마나 선명하게 구축하느냐가 중요해진 셈이다.
그 출발점에 'GV90 네오룬(GV90 Neolun)'의 코치도어가 있다. GV90 네오룬에는 차체 중앙의 B필러 없이 앞문과 뒷문이 서로 마주 보며 열리는 '네오룬 아치 게이트'가 적용됐다. 리어 도어가 바깥쪽으로 이동한 뒤 회전하는 듀얼 모션 힌지를 새로 개발해 앞문과 간섭 없이 각각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했다.
B필러를 없애면 승하차 공간과 개방감은 커진다. 동시에 차체 측면 강성과 충돌 안전을 다른 구조에서 확보해야 한다.
제네시스는 기존 B필러가 담당하던 역할을 도어와 차체 곳곳으로 분산했다. 도어 내부에는 초고강도 듀얼 스틸 빔을 넣었고 탑승 공간에는 기존보다 1.5배 두꺼운 골격과 초고강도 스틸 튜브, 구조용 폼으로 구성된 히든 롤케이지를 적용했다. 현대차그룹은 B필러가 있는 차량과 동등한 수준의 충돌 안전 성능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정의선 회장이 GV90 개발 과정에 대해 "풀지 못한 난제도 많았고 처음 시도하는 부분도 있었다"고 밝힌 대목도 이런 개발 과정과 연결된다. 연구개발 단계에서 새로운 구조와 기술을 구현해야 하는 부담이 컸지만 "이걸 이뤄내야 또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는 방향 아래 개발을 이어갔다는 설명이다.
GV90에 적용된 기술을 들여다보면 정의선 회장이 언급한 '한 단계'의 의미도 보다 분명해진다. B필러 없는 코치도어와 세계 최초 루프 에어백, 현대차그룹 최초의 듀얼 전자식 차동 제한 장치(e-LSD), 시동 버튼을 없앤 신규 전원 체계까지 기존 제네시스에서 볼 수 없었던 기술이 한 모델에 집중됐다.
플래그십을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검증된 기술을 조합하는 방식보다 새로운 구조와 사용자 경험을 함께 개발하는 쪽을 택한 셈이다. GV90는 제네시스의 최고급 SUV이면서 향후 브랜드의 기술과 사용자 경험을 가늠할 기준점 역할도 맡는다.
안전 설계에도 공을 들였다. GV90에는 모두 12개의 에어백이 들어가며 차량 전복 사고에 대응하는 루프 에어백이 세계 최초로 적용됐다. 사고 발생 시 루프 글라스 전체를 덮어 탑승객의 차량 밖 이탈과 루프 충돌에 따른 상해 위험을 낮추는 방식이다.
동승석에는 탑승객 자세에 따라 두 단계로 펼쳐지는 듀얼 뎁스 에어백을 적용했고 시트 쿠션에도 에어백을 넣었다. 3열 보호 커튼 에어백을 포함해 차량 안 모든 좌석의 보호 범위를 넓히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배터리 주변 구조도 강화했다. 전방 충돌 시 모터와 서브프레임이 배터리를 직접 타격하지 않도록 슬라이더 구조를 적용했고, 셀 간 열 확산을 억제하는 배터리 열전이 안전 기술(Thermal Runaway Protection, TRP)도 넣었다. 클라우드 기반 배터리 매니지먼트 시스템은 잠재적인 이상 징후까지 사전에 진단하도록 설계됐다.
차체와 안전 구조가 GV90의 뼈대라면 제네시스 플래그십 전용 'eMP(Electric Mobility Prime)' 플랫폼은 차량의 체급을 결정하는 기반이다. GV90는 3245㎜의 축간거리를 바탕으로 플랫 플로어와 슬림 칵핏을 구성했다. 전장은 5285㎜다. 초대형 SUV의 차체 크기를 뒷좌석 공간과 실내 활용성으로 연결하기 위한 설계다.
배터리는 123.5㎾h로 현대차그룹 전기차 가운데 가장 큰 용량이다.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7인승 기준 500㎞로 제시됐다. 해당 수치는 인증 결과가 아닌 회사 연구소 측정 기준이다. 350㎾급 급속 충전을 이용할 경우 배터리 잔량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22분이 걸린다.

제네시스 GV90 네오룬 외장. ⓒ 제네시스 브랜드
성능도 플래그십에 맞췄다. 전·후륜 모터 합산 최고출력은 490㎾, 최대토크는 800Nm다. 현대차그룹 전기차 가운데 가장 강력한 수준의 모터 성능이다.
전륜과 후륜에는 각각 e-LSD가 들어간다. 네 바퀴에 전달되는 힘을 주행 상황에 따라 조절해 고속 선회와 눈길·빗길에서 안정적인 움직임을 확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여기에 강성을 조절할 수 있는 멀티 챔버 에어 서스펜션과 최대 5도까지 뒷바퀴를 조향하는 능동형 후륜 조향(RWS, Rear Wheel Steering)을 더했다. 차체가 커진 만큼 승차감과 선회 안정성, 저속에서의 기동성을 함께 관리하기 위한 구성이다.
제네시스가 GV90에서 공을 들인 또 다른 영역은 정숙성이다. 전면 윈드실드부터 비전루프, 테일게이트까지 모든 유리에 두께 5㎜가 넘는 차음 유리를 적용했다. 차체 주요 골격의 빈 공간에는 고발포 방음 충진재를 넣고 흡차음재와 실링 구조도 강화했다.

제네시스 GV90 네오룬 외장. ⓒ 제네시스 브랜드
전기차는 엔진 소음이 없는 만큼 풍절음과 노면 소음, 차체를 통해 들어오는 진동이 상대적으로 쉽게 드러난다. 제네시스가 차체 구조 안쪽까지 손댄 이유도 GV90에서 플래그십의 고요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주행 성능을 숫자로 끌어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탑승자가 차 안에서 느끼는 소리와 움직임까지 제품의 가치로 다루겠다는 방향이 여기서 드러난다. 정 회장이 말한 '타는 사람의 만족'을 차량의 물리적인 감각까지 넓힌 셈이다.
차량을 사용하는 방식도 기존 제네시스와 달라졌다. GV90에는 현대차그룹 최초로 시동 버튼이 사라졌다. 도어 핸들을 당기면 차량 전원이 켜지고 탑승 후 도어를 닫으면 회전형 변속 레버와 크리스탈 스피어 컨트롤러 등이 움직이며 주행 준비 상태를 알린다. 이후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기어를 선택하면 바로 출발할 수 있다.

제네시스 GV90 네오룬 외장. ⓒ 제네시스 브랜드
센터 디스플레이 역시 상황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주행할 때는 23.6인치 화면을 사용하고 정차 중에는 디스플레이가 90㎜ 올라오며 24.6인치로 확장된다.
현대차그룹의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플랫폼 '플레오스 커넥트(Pleos Connect)'와 차량용 인공지능(AI) 에이전트 '글레오 AI(Gleo AI)'도 적용됐다. 차량 제어와 정보 검색을 대화 방식으로 이용하고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차량 전용 애플리케이션도 내려 받을 수 있다.
GV90 네오룬은 정차 중 앞좌석을 180도 회전할 수 있는 전동식 스위블링 시트도 갖췄다. 운전석과 조수석이 뒷좌석을 바라보도록 돌려 차량 내부를 라운지처럼 활용할 수 있다.

제네시스 GV90 네오룬 내장. ⓒ 제네시스 브랜드
여기서 제네시스가 바라보는 플래그십의 방향도 드러난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빠르고 편안하게 이동하느냐와 함께 차량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까지 상품 개발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한국적 요소도 같은 흐름에 배치했다. 외관은 한국의 달항아리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5285㎜에 달하는 큰 차체를 과도한 장식보다 곡선과 비례 중심으로 구성했고, 후면 역시 리어 스포일러와 장식 요소를 줄여 매끄러운 형태를 강조했다.
4인승 'GV90 네오룬 이그제큐티브 스위트'에는 천연 우드 베니어를 활용한 우드 플로어와 한국의 온돌에서 영감을 받은 복사열 난방 시스템도 적용했다. 2열과 트렁크 사이에는 파티션을 설치하고 냉장고와 테이블을 배치해 이동 공간을 독립적인 VIP 공간으로 구성했다.

제네시스 GV90 네오룬 내장. ⓒ 제네시스 브랜드
제네시스가 강조하는 '한국적 환대' 역시 이런 사용 경험에서 구체화된다. 한국적인 장식물을 곳곳에 배치하는 방식보다 탑승 과정과 좌석, 난방, 정숙성처럼 고객이 실제로 체감하는 부분을 세밀하게 다듬는 데 초점을 맞췄다.
결국 GV90는 제네시스가 지난 10년 동안 축적한 디자인과 전동화 기술, 고급화 전략을 한 차에 모아놓은 모델이다. 동시에 브랜드의 새로운 10년이 어떤 럭셔리를 향하는지 보여주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정의선 회장은 제네시스의 브랜드 가치에 대해 "타는 분들이 얼마나 만족하고 그분들의 인생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야 할 길도 멀다"고 평가했다.
GV90의 성패를 가를 기준도 결국 같은 곳에 놓인다. 세계 최초 기술과 123.5㎾h 배터리, 490㎾ 출력 같은 숫자가 고객에게 얼마나 높은 만족으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 제네시스가 새롭게 설계한 승하차 방식과 안전, 정숙성, 실내 공간, 소프트웨어까지 실제 사용 과정에서 '가격 이상의 가치'로 받아들여질 때 GV90가 맡은 역할도 보다 선명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