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한국 조선산업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품질, 가격, 기술력 등 어느 하나 뒤지는 게 없다. 한ㆍ중ㆍ일 비교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그중엔 일본 기술력을 좀 더 높은 수준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대세는 이미 한국 쪽으로 기운 지 오래다. 한진중공업은 한국 조선업의 ‘대모’격이다. 한국 조선 신기술 대부분이 한진중공업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기술 사관학교’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70년대 조선업에 뛰어든 현대중공업(73년)과 삼성중공업(77년), 대우조선해양(78년)이 나란히 세계 조선업계 ‘빅3’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도 한진중공업이 그동안 쌓아놓은 조선 기술력과 경험의 덕을 적잖게 보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특별기획 [50대기업 대해부]를 통해 한진중공업그룹의 △성장비화와 △총수가계도 △지분구조 등에 대해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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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 | ||
한진그룹의 역사는 1945년 11월 조중훈 회장이 인천시 해안동에 ‘한진상사’ 간판을 내걸면서 시작됐다. 여기서 ‘한진’은 ‘한민족 전진’을 뜻한다. 창업주 조중훈 회장이 처음 시작한 일은 인천항의 화물을 화주에게 실어 나르는 일이었다.
트럭 한 대로 시작해 1950년대 주한미군 물자 수송, 1961년 서울~인천을 운행하는 한국 최초 지정좌석 방식의 버스사업 등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던 한진이 한 단계 발돋움 한 계기는 베트남전쟁 때다. 베트남전에서 군수 물자 수송으로 기틀을 다진 한진은 1971년까지 5년 동안 수송관련 자회사를 잇따라 설립하면서 종합물류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어느 정도 각 분야 사업이 안정 궤도에 오르자 고 조중훈 회장은 1989년 대한조선공사를 인수, 한진중공업을 출범시켰다. 이 역시 한진해운의 늘어나는 선박수요와 노후선박 교체수요에 맞추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던 2002년 초겨울, 고 조중훈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한진그룹은 4개사로 쪼개졌다. 2세 경영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가장 먼저 '분가'한 이는 막내 메리츠증권 조정호 회장이었다. 조정호 회장은 2000년 5월 한진그룹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어 2005년 차남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중공업부문을 떼어 분가했다.
현재 한진그룹은 △장남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이 항공부문을 △차남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중공업부문을 △3남 한진해운 고 조수호 회장이 해운부문을 △4남 메리츠증권 조정호 회장이 금융부문을 각각 맡고있다.
◆조선업계 ‘산증인’
한진중공업 역사를 들여다보면 유독 ‘국내 최초’란 표현이 눈에 많이 띈다. 국내 조선 역사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우선 국내 첫 조선소가 바로 한진중공업이다. 한진중공업은 1937년 조선중공업주식회사란 이름으로 부산 영도에 설립됐다. 이런 이유로 한진중공업은 ‘대한민국 조선1번지’로 불리곤 한다.
설립 이듬해인 1938년에는 국내 최초로 390톤급 철강 화물선을 건조했고, 45년에는 대한조선공사로 재출범해 국영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대한조선공사는 68년 11월 같은 이름으로 민영화됐다.
민영화 이후에도 대한조선공사는 69년 국내 최초로 철강어선 20척을 건조해 대만에 수출했다. 이후 72년 국산 경비정인 ‘학생호’를 건조했고, 74년에는 3만톤급 대형선박 6척을 미국 걸프사에 인도했다. 이 밖에도 77년에는 국내 최초로 석유시추선과 자동차 운반선을, 78년에는 화학제품 운반선을 수출했다.
대한조선공사가 현재 한진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1990년. 한진중공업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사주가 바뀌었지만 한진중공업의 ‘최초’ 행진은 계속 이어졌다. 국내는 물론 동양 최초로 멤브레인 타입 LNG선(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을 건조한 것이다. 한진중공업은 국내 최초로 해저 광케이블선을 건조하기도 했다.
이런 명성에도 불구, 한진중공업에게는 한 가지 커다란 고민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도조선소의 설비제한 문제다. 한진중공업의 메인공장인 부산 영도조선소 규모는 8만평.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200만평)이나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150만평)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규모다.
이 때문에 한진중공업은 다른 경쟁업체들이 대규모 수주 등을 통해 세계 1위와 2위로 올라서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일단 규모가 턱없이 작으니 대규모 수주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후발업체들의 선전을 그저 넋 놓고 바라봐야 하는 처지가 뼈아플 따름이었다.
하지만 마냥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작은 규모의 조선소라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생산성 극대화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이는 한진중공업만의 독특한 선박 건조기술이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가 댐(DAM) 공법이다. 영도 조선소엔 도크가 단 1개밖에 없다. 도크란 선박의 일부인 블록들을 모아놓고 최종 조립하는 기다란 직사각형 공간을 말한다. 도크 안에서 용접작업을 해가며 여러 블록들을 이어 붙여 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영도엔 조선소가 1개밖에 없을 뿐 아니라 땅이 좁은 만큼 도크 크기도 매우 작다. 도크 길이가 300m밖에 안 된다. 따라서 어느 정도 큰 선박을 만들려면 배 꼬리부분이 도크를 벗어나곤 한다. 도크를 벗어나면 곧바로 바다기 때문에 한진중공업은 대형 선박을 건조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곤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댐 공법이다. 꼬리부분을 뺀 나머지 부분은 도크에서 조립하고 바닷물 쪽(도크 밖)으로 삐져 나간 꼬리부분은 바닷 속에서 이어붙이는 식이다. 이 공법의 핵심은 수중용접 기술, 댐공법은 한진중공업이 특허까지 보유하고 있는 고유기술이다.
국내 최초 수직자동 용접기(EGW)도 주목할 만하다. 한진중공업은 극후판 전용 특수 수직자동용접 기법을 개발해 8100TEU급 컨테이너선에 적용하고 있다. 극후판은 외판 두께가 아주 두꺼운 철판을 뜻한다.
8100TEU급 컨테이너선은 외판 두께가 75㎜에 달해 기존 용접법으론 수십 시간이 소요된다. 75㎜ 철판 100m를 용접하는 데 종전 용접기법으론 300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수직자동 용접기를 적용해 시간을 30시간 이내로 대폭 단축했다.
게다가 도크를 마음껏 지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도 찾았다. 바로 필리핀이다. 한진중공업은 총 7000억여원을 투자, 필리핀 수빅만 경제자유구역 내에 231만㎡(70만평)에 달하는 세계 최대 건조능력을 보유한 대형 조선소를 건설했다. 영도조선소에 비하면 9배나 넓다.
◆생산ㆍ관리 효율화도 장점
생산ㆍ관리 효율화가 국내 조선소 중 최고 수준이란 점도 한진중공업의 강점이다. 이 회사는 영업ㆍ설계ㆍ자재ㆍ생산ㆍ품질ㆍAS로 이어지는 모든 정보를 전사적으로 공유하고 최첨단 그룹웨어와 통합생산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생산ㆍ관리 효율화를 달성하고 있다.
경영 효율성을 보다 극대화하기 위해 한진중공업은 2007년 8월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선언했다. 한진중공업을 지주회사(한진중공업홀딩스)와 사업 자회사(주 한진중공업)로 분할하기로 한 것.
현재 한진중공업홀딩스는 △한진중공업을 비롯 △한진도시가스 △한일레저 △한국종합기술 △Hacor INC 등 5개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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