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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번째 시위 ‘어린이들 메시지’도 더럽혀졌다

20년 외침 ‘위안부 평화비’…일본 중년여성들 “힘내” 응원

최영식 기자 | cys@newsprime.co.kr | 2012.01.13 17:34:33

[프라임경제] 위안부 ‘수요시위’가 올해로 벌써 20년째다. 1992년 1월8일 미야자와 기이치 전(前) 일본총리가 방한한 날,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과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렇게 시작된 수요시위는 이제 1004회를 넘어섰지만, 일본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하지만 매주 수요일 오전 12시, 20년간의 외침은 헛되지 않고 ‘위안부 평화비’로 형상화 되고 있다. 그녀는 반짝 추위가 내린 오늘도 어김없이 일본대사관을 꼿꼿이 바라보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004번째 수요시위가 끝난 다음 날인 1월12일 목요일 이른 아침, 종로구 중학동에 위치한 일본대사관을 찾았다. 영하 9도까지 내려가는 반짝 추위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도착해서 바라본 일본대사관은 아무 일도 없는 듯 붉은 일장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일본대사관 입구에는 의경 버스 3대가 담장을 가리고 세워져 있었다. 지난 8일 오전 8시쯤 한 중국인이 기습적으로 대사관 담장에 화염병 4개를 던진 사건 때문인지 분위기는 매우 삼엄했다. 일본대사관으로 통하는 도로와 골목 곳곳마다 의경을 배치해 경계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위안부 평화비 소녀상’은 오롯이 의자에 앉아 일본대사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1월 12일 목요일 사람들이 입혀준 옷을 따뜻하게 입고 있는 위안부 평화비 소녀상의 모습이다.

◆하루 사이에 짓밟힌 어린이들의 응원 메시지

위안부 평화비의 소녀상은 담요와 털모자 그리고 목도리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따뜻하게 감싸져 있었다. 그리고 아기자기한 인형들, 눈사람 모금함과 함께 소녀상 발밑에는 노란 종이가 놓여 있었다. 전날 1004번째 수요시위에 왔었던 아이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고 간 것이었다.

하지만 노란 종이는 하루 사이 자동차 바퀴에 밟혀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보는 순간 우리의 무관심과 지난 20년간 위안부 문제를 등한시 해오던 일본정부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하루 전인 1월 11일 1004번째 수요시위 때 어린이들이 남겨둔 응원 메시지가 바퀴 자국으로 더럽혀졌다.

잠시 후 군복을 입은 한 할아버지가 다가오더니 이 광경을 보고 주위를 배회하던 의경에게 “간밤에 없는 사이에 다 밟고 지나갔네. 너네는 차 다니는 거 보면서 뭐하냐. 이거 안보여? 경찰이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고 앞에서 쇼나하고 말이야”라며 역정을 냈다.

그는 위안부 평화비 뒤쪽의 좁은 통로에 가져온 짐을 풀었다. 다시 다가와 흙투성이인 노란 종이를 들어 툭툭 털더니 깨끗하게 닦아 다시 놓을 거라며 가져갔다. 그리곤 가방에서 일본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적힌 현수막을 여러 장 꺼내 테이프로 붙이고, 태극기를 꽂았다.

◆8년간 731번째 시위, 군복 입은 박세환 목사

박세환(60, 백승교회) 목사는 31년 동안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2005년부터 올해까지 8년 동안 일본대사관 앞에 나와 시위했고, 12일이 731번째가 되는 날이라고 했다.

   
박세환 목사가 위안부 평화비 소녀상 뒷쪽에 위치한 골목에 앉아서 쉬고 있다.

군복을 입고 온 이유를 묻자 그는 “원래 신분을 가리기 위해 입었다. 이제는 다들 아는 사실이라서 큰 의미는 없다. 다만, 장교로 군 제대를 했고 언제든지 조국을 위해 전쟁터에 뛰어들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이어 “위안부 평화비를 지키고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계속해서 시위할 것이다”라며 단호히 말했다.

위안부 평화비가 생기고 난 뒤 가장 많이 바뀐 점을 물어보자 그는 사람들의 높아진 관심에 대해 언급했다.

동상이 세워진 후 전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온다고 한다. 특히, 일본 사람들의 방문이 눈에 띄게 많아 졌다고 말했다. 이 날도 중년 일본여성 3명이 찾아와 위안부 평화비 소녀상과 함께 사진을 찍고, 어눌한 발음으로 “힘내”라는 말을 하고 발길을 돌렸다.

   
위안부 평화비 소녀상이 세워진 후 일본인의 방문이 잦아졌다. 오전에 찾아온 세명의 일본 중년 여성들은 사진을 찍고 "힘내"라는 말을 건네고 돌아갔다.

박세환 목사는 “이젠 시위할 때면 항상 위안부 평화비가 있으니, 할머니가 내 옆에 실제로 있는 것 같아 힘이 된다”고 말했다. 오후가 되어 눈발이 날리자 자신이 입으려고 가져온 우의를 꺼내 소녀상에게 입히고, 옆자리에 놓인 인형들에겐 우산을 씌워 주었다.

그는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참배 반대, 대마도 반환, 안중근 의사 암매장 장소 공개에 관해서도 일본 정부의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오후가 되어 눈발이 날리자 박세환 목사는 자신의 우의를 꺼내 위안부 평화비 소녀상에게 입혔다.

◆유례없는 세계최장기록 수요시위…위안부 평화비 소녀상의 숨은 의미는?

20년간 이어진 일본군 위안부 수요시위는 단일시위로는 사상 유례가 없는 세계최장기록을 세웠다. 위안부 평화비는 지난 2011년 12월 14일에 수요시위가 1000회가 되는 날을 맞아 세워졌다. 일본 정부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위안부 평화비의 소녀상은 130cm 높이의 청동제 동상이다. 소녀상의 오른쪽엔 시민의 몫으로 빈 의자를 마련해 두었다. 원래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소녀상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지만, 소녀상보다 의자 높이를 낮춰 위안부 할머니들께 예의를 갖췄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하는 의견이 있어 현재는 빈 의자위에 사람들이 선물로 놓아둔 인형들을 모아 올려두었다.

소녀상은 저고리에 긴 치마를 입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발은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로 형상화되었다. 당시 전쟁 때 찍은 사진에서 모두 맨발을 하고 있는 것에 착안했다고 한다. 일본군들은 위안부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버선을 벗겨 놓았는데, 옛 여성들은 낯선 남자에게 맨발을 보이는 것을 매우 치욕적인 일로 여겼다.

이를 알고 있는 이영부(71) 할아버지는 소녀상의 발에 목도리를 둘러줬다고 한다. 그리고 2~3일에 한 번씩 새 목도리를 가져와 갈아주고 풀리지 않도록 옷핀으로 단단하게 고정한다. 이 날에도 오후 5시쯤 찾아와 소녀상의 발에 정성스레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이영부(71) 할아버지는 2~3일에 한 번씩 위안부 평화비 소녀상을 찾아와 깨끗한 새 목도리로 갈아준다.

왼쪽 어깨엔 살아계신 할머니와 돌아가신 할머니를 이어주는 ‘영매’인 새가 앉아 있고, 가슴의 나비는 ‘환생’을 뜻한다. 바닥에 그려진 그림자는 소녀가 아닌 쪽진 머리를 한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올해만 16명 별세…남은 생존자 63명뿐

지난 12월13일 1000번째 수요시위를 하루 남기고 위안부 피해자 김요지 할머니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올해만 16명의 위안부 할머니가 숨을 거뒀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234명의 위안부 할머니 중 생존자는 63명.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일본정부는 공식 사죄하고 일본군 위안부 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한 행정적, 입법적 조치를 하루 속히 취할 것을 촉구한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싸울 것이다”고 말했다.

   
우의를 입은 위안부 평화비 소녀상이 일본대사관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현재 정대협은 위안부 ‘수요시위’ 활동 외에도 정대협 윤미향 대표가 지은 ‘20년간의 수요일’을 발간했으며, 서대문 독립공원 내 작은 매점 부지에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설립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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