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창업 초기엔 현장 인부 관리 담당하기도
[프라임경제] “요즘 건설업계가 정말 바닥을 친 상황이다. 그렇다보니 전문건설업으로 하도급을 받아서 하는 업체는 말 그대로 죽을 지경이다”
형형한 눈빛의 김 사장은 기자를 만나자 마자 한숨을 연거푸 내쉬며, 건설경기 걱정을 쏟아냈다. 올해 50세. 건설밥만 20년이 넘는 베테랑에게도 근래의 불경기는 견디기 힘든 것 같았다. 그도그럴것이 지금 지방은 거의 초토화된 상황이니 더해 무엇하겠는가? 김 사장은 이를 인식한 듯 툭, 한마디 건넨다.
“2004년에 서울로 올라오지 않았으면, 우리 회사도 아마 지금쯤 문 닫았다. 요즘같은 경기라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경영을 한다해도 답이 안나온다”
그러나 김 사장은 10여년 전, 경영난을 겪던 구평공영(당시 진명건설)을 인수해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경력이 있다. 더구나 2004년에는 지방에 머물러서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본사를 서울로 옮기게 된다. 결단이 조금만 늦었어도 지금 회사는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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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몇몇 건설사로부터 공사 수주 약속을 받았다. GS·현대는 협력을 타진하고 있다. 롯데, 서희건설, 늘프른 주택, 진흥기업, 대주건설, 모아주택 등과는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시공을 한 곳은 수없이 많다”고 말했다.
재창업 당시를 물어봤다. 김 사장은 현장 총무일은 물론 인부들 관리도 했다고 한다. “완전 밑바닥에서 시작했다. 회사마다 단가가 달라 어려움을 겪을 땐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힘든 현장이 수 없이 많았지만, 절대 중간에 그만 둔 공사는 없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 사장은 “1.11대책 등으로 어렵지만 올해에는 GS·SK·한화건설 등 협력업체 등록을 10곳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주공 협력업체도 목표로 삼고 있다. 업력이 있어서 인식이 좋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무리한 사세확장과 분에 넘치는 길에 눈한번 주지 않고 사업을 이끌어온 마음가짐이 현재의 회사를 만든 것이고, 무엇보다 그를 도운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김 사장에게는 가족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외아들을 군대에 보냈다가 생살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서울로 본사를 옮긴 직후인 2004년 12월1일 군대간 외아들이 간암 판정받아서 수도병원에서 고대병원으로 옮겨 투병하다 1년 뒤 죽었다. 국방부에서 보상금 천만원 준게 전부다. 작년 12월28일이 일주기였다. 최소한 일년에 한번씩 엑스레이 검사 받았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한겨레신문이랑 동아일보에서 취재해 갔는데, 기사화되지 않았다. 최근 보훈처에서 2008년인가부터 부터 업무상 재해를 넓혀 혜택보도록 하겠다는데, 이미 지나간 후에 바꾸면 뭐하겠나?”
그러나 그는 일년동안 병원에서 출퇴근하며 회사를 이끄는데, 소흘함이 없었다. 아들에 대한 아픔을 회사의 내실을 기하는데 쏟아부은 것이다.
벌교 벽돌공장 아들로 자라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도 했던 김경수 사장. 금융, 유통업에 잠시 눈을 돌렸던 시절을 빼곤 온전히 건설업에 젊음을 바친 인물이다.
건설업계의 고질병인 온갖 부작용에 휘말린 적이 없었던 이유가 욕심부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어쩌면 너무도 지키기 어려운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욕심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김경수 사장 약력
1976년 광주 진흥고등학교 졸업
1978년 조선이공대
공업경영학과 졸업
1982년 공군 만기
전역
1983년 광주
방림신협입사
1988년
풍산건설㈜입사
1997년
구평건설㈜입사
1999년 구평공영㈜ 대표이사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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