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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찬찬히읽기]본동일기·하나 - 윤중호(1956~2004)

 

프라임경제 | www.newsprime.co.kr | 2007.06.09 12:02:16
[프라임경제]본동일기·하나 - 윤중호(1956~2004)

흑석동 산 날맹이, 내가 세든
무허가 판자집 너머
헐리운 집 담장 근처에, 샛노란
돼지감자꽃이 피었습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릴 줄도 알아서
한강 대신 흐르던 저녁안개가
무허가로 밀려와도
손뼉치며 깔깔댑니다.
오랜 행상에 지친 우리 엄니는
삭월세 보증금 걱정을 하시고
판자집과 함께 언제 뜯길지 모르는, 내 건강을
걱정하시지만
“근디 엄마”
저는 딴전을 피우며 말했습니다.
“글씨 두고 봐유, 내년에도 다시 돼지감자꽃이 필 텡께유”

<‘본동에 내리는 비’중에서, 문학과지성사, 1988>


흑석동 무허가 판자집 너머로 핀 것이 꼭 돼지감자꽃인지, 바람이 불면 흔들릴 주도 하는 것이 꼭 돼지감자꽃인지, 저녁안개가 무허가로 밀려와도 손뼉치며 깔깔대는 것이 꼭 돼지감자꽃인지, 무허가 판자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인지, 무허가 판자집 세 들어 사는 시인인지, 잘 모르겠다. 시 속에서 이들이 슬쩍 슬쩍 넘나들고 있다.

“엄니”라는 말이 주는 친근함은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친근함일 거다. 나이가 아무리 먹어도 엄니는 엄니다. 나도 어릴 때는 엄마라고 불렀는데, 중학교 때던가 고등학교 때던가, 좀 철이 들면서,“어머니”라고 말을 슬쩍 바꾸어서 부른 기억이 있다. 지금도 나는 엄마와 어머니를 섞어서 쓰고 있다. 진진하게 깊은 마음으로 아들 걱정을 하시는 분은 언제든지 “엄니”다. 어머니는 이미 엄니보다 한 발짝 더 멀다.“엄니”의 걱정과 “엄니”라는 정겨운 낱말이 서로 착 붙어서 어울려 있다.

어머니의 걱정을 어떻게 덜어드릴 수 있겠는가? 어느 아들이 어머니의 걱정을 다 덜어 드릴 수 있겠는가? 시 속에서 시인이 피우는 딴전은 이 모든 걱정과 근심을 슬쩍 덮어버린다. 우리들 삶이란 이렇게 눙치며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본동에는 무허가 판자집은 없을 것이다. 사글세 보증금 걱정들도 모두 사라졌겠지. 물론 돼지감자꽃도 모두 사라졌겠지. 이 땅의 엄니들의 걱정도 모두 사라졌을까? 오늘 같은 날은 한강에 안개가 자욱이 끼겠다.

   
 
 
전무용/시인

1956년 충북 영동 출생
한남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83년 <삶의 문학> 동인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희망과 다른 하루>(푸른숲)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시 전문 계간지 <시와 문화> 필진
현재 대한성서공회 번역실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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