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제 18회 이건음악회가 열린다. 이와 관련 9일 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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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속 음반사에 대해서 브라스 밴드 만의 공식적인 음반 회사가 있다. 하모닉 브라스에서 직접 운영을 하는 자체음반 제작 회사가 따로 있어서 제작과 보급이 이루어 진다.
2. 이번에 하모닉 브라스 밴드가 한국에 오게 된 목적은 이건의 18주년 음악회를 축하하기 위한 방문인데, 친분이 있는 한국인이 있는지?
-대학시절부터 한국 음악가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다. 음악을 전공하기 위해 독일로간 유학생들과의 교류가 많았다. 대학시절부터 그들과 같이 작업을 많이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친근한 느낌을 많이 갖고 있다.
-(정명훈 지휘자의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긴 하지만) 정명훈씨 같이 독일에서 활발한활동을 분들도 알고 있다. 한국에 와서 한국 음악가들, 대학생들 그리고 여러 음악 단체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에 매우 관심이 많다.
3. 아람누리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하는 아이들처럼 입술 다친 아이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마스터클래스에서 만나 본 적이 있는지? 또 금관악기는 한국에서 비주류 악기인데, 독일에서는 금관악기를 처음 아이들에게 어떻게 흥미를 갖도록 하는지?
-이미 독일에서 뮌헨에 있는 ‘Life Music Now’ 라는 회사를 통해 병원 공연을 많이 가는데 그 때 많은 공연에 참여를 했었다.
-독일에서는 금관악기를 처음 시작 하는 것이 교회 브라스와 지역 브라스 활동으로 나뉘게 된다. 로컬 브라스는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고 교회 브라스는 교회음악을 많이 연주한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리코더로 브라스 음악을 시작하여 시간을 거쳐 8세가 되면 트럼펫이나 호른 같은 다른 종류의 금관악기로 역량을 넓혀 간다. 50만 명의 브라스 연주자가 현대 독일에 있다.
-(부가설명)독일은 어린이들에게 금관악기로 교육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가 피아노로 아이들에게 음악교육을 시작하듯이) 교회에 성가대처럼 독일에는 앙상블이 교회 행사에 많이 참여한다.
4. 공연 때 악기를 기증하는데 평소 브라스밴드가 사용하던 악기인가 아니면 이번 기증을 위해 구입 한 새것인가?
-새 악기이다. 우리가 기증하기 위해 이번에 새로 구매한 트럼펫이다. 저녁 리허설에서 테스트 하게 될 것이다.
5.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음악세계를 구축해 ‘새로운 음악의 외교관’이라고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건지 ‘하모닉 브라스’의 음악세계를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우리의 세계관을 말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도록 노력하고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청중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우리의 철학, 즉 하모닉 브라스는 사람을 위해서 연주한다. 청중들의 취향에 맞는, 청중들이 만족할 수 있는 공연을 연주하는 것이다. 편곡 스타일에 관해서는 처음 작곡한 사람의 의도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편곡자의 의도가 중요시 된다. 번스타인(유명 지휘자)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바로크가 됐든 모던이 됐든 음악은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이 있는 것이지, 옛날 음악과 요즘 음악으로 구분하지는 않는다.
6. 청중의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 하셨는데, 거기에 대해 추가적으로 연주하면서 청중들을 즐겁게 하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에 관해서 이야기 해 주신다면요?
-우리는 연주를 농담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를 ‘경계’로 삼을 지가 중요한데, 연주와 음악을 통해서 청중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지 부가적인 요소를 집어넣어는 것은 아니다. 청중들이 음악회 관람 후 자리를 뜰 때, 미소를 짖고 나가면 우리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연주 중간중간에 해설을 항상 넣는데, 그것은 엔터테인먼트의 역할이라기 보다는 곡 사이사이를 연결 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7. 이번 음악회에서도 공연 중 해설을 하시는지?
-물론 이번 음악회 때도 해설은 들어가고, 끝에 앉아계신 김현영씨(트럼본 연주자 의 부인) 가 해설을 해 주실 것이다. 우리 연주 방식에 있어서는 전형적으로 악보를 보며 연주하는 방식도 있지만 악보 없이 홀을 누비며 연주를 하는 경우도 많다. (가브리엘레가 작곡한 곡인 경우 특히 그렇다) 작곡자 가브리엘레는 독특한 연주 방식(다중합창기법)을 사용했었는데 그것을 우리 하모닉 브라스가 현대에서 재현하는 방식으로, 홀 양 쪽으로 나눠서서 독특한 방식으로 연주를 할 것이다.
8. 이번 공연의 곡들을 보면 오페라 서곡이라든지 오케스트라 연주곡이 많은데, 개인적 취향에서 이런 곡들을 선정 한 것인지 아니면 금관악기로 표현하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에서 선택하고 편곡 한 것인지?
-이번 프로그램의 명이 콘체르토 이탈리아노이다. 이태리를 연상하고 그에 따라가려는 의도에서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에 오페라 서곡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외 금관악기를 위한 곡이 아님에도 편곡하여 연주하는 이유는 하모닉 브라스를 통해 ‘모든 음악을 금관악기로’ 들려주고자 하는 의도에서이다.
-매년 연주 CD를 우리가 제작한다. 전 세계를 돌며 우리의 예정된 컨셉으로 연주를 하고,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특별 연주를 기획하여 연주하는 편이다. 이번 한국의 이건음악회도 우리의 컨셉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올해의 컨셉이 콘체르토 이탈리아노이다.
9. 이번 금관악 5중주 곡들은 대부분의 곡이 편곡 된 곡이라 반복되는 레퍼토리가 있는데, 그래서 편곡자의 개성이 프로그램 성격에 굉장히 많이 반영 될 것 같다. 자신만의 편곡적 개성, 남과 차별되는 점이 있는가?
또 볼레로 연주에 있어서 음악적 표현을 금관악기 연주자 5명 만으로 어떻게 풀어 나가는가? 금관악기는 음색도 거의 같은데, 어떻게 그 묘미를 살릴 것인지? 지루하지 않게 편곡 했다고 자신 하시는지?
-모든 음악들은 반반씩(나와 밴드 모두가) 직접 편곡한다. 편곡 할 때는 음악의 전체적인 부분들을 청중들이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해서 많이 고려하고 편곡에 임한다.
-매년 프로그램은 우리의 컨셉에 따라 바뀐다. 모든 곡 들 간의 묘미를 찾으려 노력하며 항상 작품의 원작이 가장 우선시 된다. (우리는 원작의 영혼을 깊이 생각한다.) 개성도 중요하지만 각 악기의 음역에 대해 신중히 고려하는 편이다. 단원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악기가 다르듯 그들 개개인의 연주에 따라 편곡이 달라지게 된다.
-볼레로 질문/ 볼레로는 각기 다른 사운드를 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자 어려운 점이다. 원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연주하지는 않고, 대략 반 정도의 길이로 편곡하여 연주를 진행한다. 트럼펫, 호른 등 각각의 관악기 마다 다른 음역이 있기 때문에 서로 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빠져주기도 하면서 편곡을 조절하는 편이다.
10. 1991년 창단 이후 멤버가 바뀐 적 있는지? 정통 오케스트라 활동까지 한 멤버도 있는데 이렇게 모두가 만나게 된 인연이 있다면?
-91년 창단 이후로 첫 창단 멤버에서 3명만 지금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취미에서 시작하게 된 것이 97년부터는 각자의 모든 활동을 접고 하모닉 브라스로의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의 연주자 중 한 분이 얼굴 근육에 무리가 와 더 이상 연주하기 힘들어 져서 그만두시게 된 이후로 멤버가 특별히 바뀌지는 않았다.
하모닉 브라스 연주단원 소개
트럼펫: 한스 젤너
트럼펫: 위르겐 그레블레너
호른: 안드레아스 빈더
트럼본: 토마스 룩스
튜바: 맘프레드 헤벌라인
트 럼 펫-Hans Zellner (한스 젤너)
그는 1968년에 슈트라우빙에서 태어났고, 1997년부터 멤버가 됐다.
그는 슈트라우빙/Lower Bavaria에서 태어났다. Paul Lachenmaier 교수, Ralf Quinque 및 Wolfgang Guggenberger 등과 함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뮌헨 음악학교와 뮌헨에 있는 Hochschule fur Musik und Thearter에서 수학했다. 1997년부터 HARMONIC BRASS 뮌헨의 트럼펫 담당으로 멤버가 됐다.
신중하게 말하는 Lower Bavaria 출신의 이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면, 누구든지 그가 카레이서가 자동차 경주하듯 르네상스 트럼펫을 연주할 거라곤 믿지 못할 것이다. 그가 자신의 음악 동반자인 피콜로 트럼펫으로 가속페달을 밟고 숨 막히는 레이싱을 시작하면, 그가 왜 첫 번째 트럼펫 연주자 Gerd Fischer 대신에 1997년에 HARMONIC BRASS에 뽑혔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바이에른 라디오 오케스트라의 이 베테랑 트럼펫 연주가는 생생하고 활기찬 연주와 흠잡을 데 없는 풍부한 표현력을 결합시키고, 최고의 데스캔트조차도 느긋한 입술놀림으로 넘어간다. 이것은 바흐 전문가들에게도 흔치 않은 것이다. 의심할 것 없이 HARMONIC BRASS 4명의 동료들은 즉시 그를 뽑기로 결정했다.
유일한 조건은 그가 그룹에 무언가 독창적인 것을 갖고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Hans Zellner는 그다지 주저하지 않았고, 그가 좋아하는 라틴넘버 “Tico Tico”를 트럼펫에 맞게 편곡했고, 그의 새로운 팀 동료들은 물론 듣는 사람들에게 그의 방식을 가슴에 새기게 하는 연주를 했다. Hans Zellner의 음악 경력에도 (매우 흥미로운) 우여곡절이 없지는 않았다. 금관악기 음악에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그의 가족에서는 예외적이게도 Hans는 처음에 바이올린, 피아노 및 오르간들을 공부했다. 그러다 나중에 뮌헨에서 공부하면서 트럼펫을 발견했다.
거기서 그는 그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그의 영감의 가장 큰 원천일 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로서 오랜 투어에 대한 필연적인 이해를 가져다 주었다. 그녀는 Regenberg 인근의 Hemau에서 두 자녀와 살고 있고, Hans가 투어에 나설 때마다 그들의 확대된 가족 범위 안에서 지루함을 느낄 수 없다. 1년에 150회라는 콘서트가 이 놀라운 친구에게는 충분치 않았듯이, 그는 여유시간마다 그의 능숙한 손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편곡한다.
트 럼 펫-Jurgen Groblehner (위르겐 그레블레너)
그는 1963년에 드레센/색스니에서 태어났으며 브라스의 창단 멤버이다.
1963년에 드레센/색스니에서 태어난 그는 Ludwig Guttler 교수와 Gunter Wilpert 교수와 함께 드레센에 있는 Musikhochschule Carl Maria von Weber에서 수학했다. 그는 HARMONIC BRASS 뮌헨의 창단 멤버이며, 트럼펫 담당이다.
Jurgen Groblehner는 HARMONIC BRASS의 창단 멤버 중 한명이다. 5중주는 오래 기다린 어린 아이와 같기에, Jurgen은 그것을 계속 성장, 성공시키고, 스타일리스트로 발전시켜 국내외적으로 환호하는 관객이 유지되도록 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 드레센 토박이의 인생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아기”가 그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이해할 것이다. 즉, HARMONIC BRASS 같은 자신만의 앙상블을 갖는다는 것은 전체주의 동독 체제에서는 거부됐던 Jurgen Groblehner의 오래 품은 꿈이다. 서독의 매력적인 연주초청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국가의 전횡은 이 젊은 트럼펫 연주가가 서독으로 가는 것을 가로막았다. 그것은 이 우수에 잠긴 독립적인 영혼에게는 불행이었다. 1989년 여름, Groblehner는 바이올리니스트인 그의 아내와 함께 용기를 모아 집을 떠나서 헝가리로 갔다. 그들은 거기서 떠돌아다니다가 국경선인 드라우강을 넘어 유고슬라비아로 들어갔고, 드디어 자유의 품에 안겼다. 몇 달 후면 장벽이 허물어질 것이라고 그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몇 년 후 이 뮤지션 부부는 뮌헨 인근의 Neuried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고, 그들의 제2의 고향인 새로운 도시에서 3자녀를 낳고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1993년에 Groblehner는 여러 콘서트에서 중재자 (moderator) 임무와 더불어 이 앙상블의 조직관리자 임무를 맡았다. 그의 창의성, 위험을 무릅쓰는 성격 및 본질에 대한 안목 덕분에, HARMONIC BRASS는 국제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그의 첫 번째 후원자이자 가장 중요한 후원자는 아마도 그의 할아버지였을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가 드레센을 거닐다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그에게 처음으로 트럼펫을 사 주었었기 때문이다.
호 른-Andreas Binder (안드레아스 빈더)
그는 1969년에 로젠하임/Upper Bavaria에서 태어났고, 1992년부터 멤버가 됐다.
1969년에 로젠하임/Upper Bavaria에서 태어났다. Siegfried Hammer 교수, Wolfgang Gaag 교수와 함께 뮌헨에 있는 Hochschule fur Musik und Thearter에서 수학했다. 1992년부터 호른 담당으로 HARMONIC BRASS의 멤버가 되었다.
Upper Bavaria의 완전한 이 토박이는 5중주의 영혼과 같은 존재이다. 그는 호른 연주자로서 금관악기 뮤지션들의 고음과 저음 사이에서 하모니를 이루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콘서트 때뿐만이 아니고, 오랜 기간의 리허설과 투어 때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그는 HARMONIC BRASS에서 일종의 약장수 같은 존재이다. 자동차 때문에 난 손톱자국은 물론 감정적 불만에 대해서도 그런 역할을 한다. 이러한 사교적인 기질에는 이유가 없지 않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가족 5명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들 광적인 4명의 뮤지션들에게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Andreas Binder가 바이올린에 지긋지긋해 하지 않았다면, HARMONIC BRASS는 실제로 그의 유연한 호른 소리의 혜택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에 방과 후에 바이올린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은 그에게 고역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바이올린에서 호른으로 바꿔보라고 (그러면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면서 여행할 수 있으므로) 제안했고, 이 제안은 그 날까지 계속됐던 그의 동기부여에 충격을 주었다.
19살 때, Andreas Binder는 뮌헨의 재즈밴드 “Mind Games”에 입단했고, 이때부터 평행선을 그으면서 2가지 일을 계속했다. 즉, 밤에는 재즈로, 낮에는 클래식 음악수업으로 지낸 것이다.
이 음악적 방랑자가 시대라는 측면에서 대립되는 두 세계 사이에서 그의 양쪽 재능을 모두 조화시킨다는 것은 항상 쉬운 것이 아니었음도 불구하고, 이러한 두 가지 재능은 HARMONIC BRASS에게 그야말로 천운이 되었다. 그들의 스타일이 음악적 경계를 초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튜 바-Manfred Haberlein (맘프레드 헤벌라인)
1967년에 뉘른베르크 인근의 Neunhof에서 출생한 이 팀의 창단멤버
1967년에 뉘른베르크 인근의 Neunhof에서 태어났고, 뉘른베르크에 있는 마이스터징거 음악학교에서 수학했다. 뮌헨에 있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음악학교에서는 Tom Walsh와 함께 수학했으며 HARMONIC BRASS 뮌헨의 창단 멤버이며 튜바 담당이다.
실제로 Manfred Haberlein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 Haberlein이 튜바를 연주하던 Forth에 있는 금관악기 합주단에서 테너호른 연주가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합주단에서 연주를 그만둔 후, Manfred는 아버지보다 훌륭한 튜바 계승자가 되었다. 2주 만에 그는 새로운 악기를 마스터했고, 부활절 축제예배에서 연주하도록 이미 허락을 받을 정도였다. 그 때부터 그에게는 막힘이 없었다. 뉘른베르크에 있는 마이스터징거 음악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기 전에 입은 연골부상조차도 그의 뚱뚱한 여인인 금관악기에 대한 애정을 흔들진 못했다. 그는 동생의 도움을 받아 목발을 짚고 쩔뚝거리며 홀을 걸어 들어가 문제없이 연주했다.
뮌헨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음악학교에 들어간 지 불과 6개월 만에, 그는 HARMONIC BRASS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그 이후부터 그는 폭풍우 같은 흐름의 음악과 콘서트 현장에서 굳건한 바위 같은 역할을 지켜왔다. HARMONIC BRASS 사무실의 투어 매니저인 그는 신중하고 냉정하게 사무실을 운영하면서도, 그는 튜바 댄스에 더욱 열정적이었다. 그의 멤버가 그가 총애하는 커다란 악기 근처로 다가올 때마다, 그는 차분하게 “무중력이란 무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앙상블의 하모니와 리듬의 중추로서 Haberlein은 그의 극도로 따뜻한 인터네이션을 제쳐둔 채 눈앞의 상황에 맞추기 위해, 때론 육중하게 고동치는 재즈 싱커페이션 (당김음)을, 때론 물 흐르는 베이스라인의 호흡처럼 차분하게 연주하여, 5중주를 뒷받침하고 지향점을 만들어 주었다. 분명히 Haberlein의 탁월한 절제에는 한계가 있는 듯 하다. 가끔 열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마다 그는 솔로 연주로 그것을 해소했다. 모든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끔씩 고역을 치르게 되는 것 처럼, 그도 그 이후 Manfred는 절대 축구선구가 될 수 없었다.
트럼본-Thomas Lux (토마스 룩스)
그는 2004년 젊은 시절에 Harmonic Brass에 입단했다. 이것은 실로 이 앙상블에게는 천운이었다. 그를 트롬본 연주자로 영입하려는 Jürgen Gröblehner의 끈질긴 노력을 그가 마침내 받아들였을 때, Thomas Lux는 이미 트롬본 연주가로서 뛰어난 경력을 펼쳐나갈 가능성을 갖추고 있었다. 나라에서도 그의 트롬본 재능을 인정하여 그의 입대영장을 보류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이미 여러 유명 오케스트라에서 대역연주가로 정평이 나있었다. 이제는 그도 오케스트라에서 정식으로 자리잡을 때가 온 것이다. 그러나 그랬다면, 그가 Harmonic Brass 생활을 통해 맛보았던 환상적인 Harmonic Brass 시절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음악에 미친 4명의 동료들과 함께 다니는 순회공연, 자신의 영혼에서 나오는 연주를 밤낮으로 할 수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구미에 딱 맞는 것이었다. 순회공연을 다니며 트롬본을 연주하는 것을 Thomas는 기쁘게 받아들였고, 빠르게 Harmonic Brass 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 잡았다. 콘서트 활동 외에도 트롬본을 최적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그는 악기 제조업자와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쩌면 조만간 “Thomas Lux” Model이 나올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바벨운동을 하고 몇 년 동안 유도 수련을 해온 라인헤센의 토박이 Thomas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 Thomas는 한국인 부인과 함께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사랑하는 아내의 고향 서울로 날아간다. 서울에 있는 동안에도 그는 동료들을 생각해, 마늘을 듬뿍 넣고 발효시킨 양배추 - 모든 맛이 풍부하게 살아있는 ‘김치’를 가지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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