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고(故) 김기만(1929∼2004) 화백은 정창모, 선우영, 김상직 화백과 함께 북한의 조선화 4대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1만원 지폐의 세종대왕을 그렸으며, 2002년 별세한 운보 김기창(1913∼2001) 화백의 셋째 동생이기도 한 김 화백은 한국전쟁 당시 북으로 가는 바람에 운보와 이별하고, 북한에서 미술교육을 받았다. 1956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를 입학해 미술 전문교육을 받았고, 1960-65년 평양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했던 고 김 화백은 민속화, 특히 매화, 국화, 게, 새우 등 전통적인 소재로 하는 그림을 자주 그렸다.
공훈화가로 활동했던 김 화백은 지난 2000년 12월 이산가족 상봉단의 일원으로 남쪽을 방문, 중풍으로 삼성의료원에 입원해 있던 형 김기창 화백(당시 88세)과 병실에서 상봉하기도 했다.
김 화백은 1925년 서울에서 태어나 4살때 어머니를 여읜 후 김기창 화백 손에서 자랐다. 유년시절 맏형 김기창 화백이 그림 그리는 것을 보면서 화가로의 꿈을 키운 김화백은 교동보통공립학교(1943년), 경기공립고등중학교(1949년)를 졸업했으며, 학창시절 이순종 길진섭 리해성으로부터 그림 지도를 받았다.
서울 시립미술연구소 연구생으로 활동하던 중 6·25전쟁이 터졌고 1951년 의용군으로 북한군에 입대했다. 그 후 1956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 학부에 입학했으며, 1960년 졸업했다. 졸업 후 1965년까지 평양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했고, 조선미술박물관과 철도미술창작사 등 북한 미술기관에서 활동하며 <한산도전투>(1967), <홍경래농민폭동>(1973), <달밤의 기러기>(1978), <궐어>(1995) 등을 대표작으로 남겼다.
다양한 색상 구사보다는 담백한 필치로 대상을 뚜렷하게 부각시킨 김 화백은 조선화(북한의 한국화)의 대표적 화가로 화조화(花鳥畵)를 많이 그렸다. 독수리, 기러기, 진달래, 매화, 감, 새우, 참게, 석류 등 자연을 담은 그림 1500점을 남긴 김 화백의 대표작은 <금강산> <달밤의 기러기> <참새> <초겨울> <달밤의 흰매화> 등이다.
예술 분야에 특출한 업적을 쌓은 인물에게 주어지는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은 바 있는 김 화백은 2000년 12월 북측 이산가족상봉단에 포함돼 형 김기창을 만나 서로 작품을 맞바꾸면서 국내에 널리 알려졌다.
그 후 2004년 6월 서울에서 열렸던 <북녘의 4대 화가전>을 비롯해 2004년 10월 <북녘작가 미술전>, 2005년 3월 <북한 최고 화가 고 김기만 화백 유작 특별전> 등 꾸준히 이어진 관련전시회를 통해 여러 작품이 소개되며 국내 미술애호가들의 눈길을 모았다. 김기창 화백은 2001년 1월에, 김기만 화백은 2004년 12월에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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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밤의 기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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