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리종원 화백. 공훈예술가로 벽화미술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34년 11월 황해북도 연탄군 오봉리에서 출생한 리화백은 63년 평양미술대학 졸업한 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 중앙미술창작사 창작가를 거쳐 70-88년 만수대창작사 벽화창작단 단장, 88년 평양미술대학 강좌장, 74-88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모자이크, 물유리, 회벽, 색부각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벽화의 내용을 월등히 높인 리화백은 벽화가 알려지기 시작한 1970년대 만수대창작사 병화창작단 단장으로 재직하면서 벽화창작을 조직하고 지도하는 등 벽화창작에 큰 공헌을 한 북한의 대표적인 작가다. 특히 평양지하철 역의 벽화형상을 초안에서 완성단계에 이르기까지 총지휘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과 공로가 인정받는 등 북한 벽화 예술분야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인정되고 있다.
그는 초기에 평양학생소년궁전 중앙홀에 모자이크벽화 <해돋이(63년)>, 수채화 <문주단(64년)>, <모란봉>, 유화 <청벽류(64년)>, <선죽교(64년)>, <묘향산(64년)> 등 풍경화와 벽화를 창작했다.
뿐만 아니라 지하철도 2단계, 3단계 벽화창작사업도 지도하였다. 이 시기에 건설된 건축물인 인민문화궁전, 김일성경기장, 4.25문화회관, 만수대예술극장 그리고 주요 대상들에 장식할 모든 벽화작품들에 대한 창작조직과 형상지도를 맡아 수행, 기념비적 건축물들의 벽화를 훌륭히 창작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리 화백은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 중앙미술창작사 창작가, 만수대창작사 벽화창작단 단장(70~88년), 평양미술대학 강좌장, 창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평양미술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기간에 유화 <노을 비낀 모란봉에서(90년 15호)>, <광주의 어머니(92년 80호)>, <백두산(95년 120호)> 등의 풍경화를 창작하였다.
1974년부터 1988년까지 조선미술가 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창작공로를 인정받아 공훈예술가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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