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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선칼럼]인터넷 미술품 경매최고가 갱신에 부쳐

 

박광선 기자 | kspark@newsprime.co.kr | 2008.01.18 13:57:40
[프라임경제]인터넷 미술품 경매 최고가격이 또다시 갱신됐다고 한다. 김종하 화백이 1980년에 그린 “여인의 뒷모습(30호)이 인터넷 경매사상 최고가인 1억7천1백만원에 낙찰되었다는 것이다.

인터넷 미술품 경매가격이 연이어 최고가를 갱신하는 것은 축하할 일이다. 여러 가지 사건으로 침체에 빠진 국내 미술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은 물론 이를 계기로 미술품 거래시장이 투명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잘 알다시피 국내 미술품 시장은 복마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누가 어떤 제품을 얼마에 팔고, 그 작품을 구입한 사람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이는 경매도 마찬가지다. 위작 의혹과 함께 비자금 마련 창구가 미술품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도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측면에서 김종하 화백 작품이 연이어 인터넷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를 갱신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본다. 실제로 김화백 작품은 지난해 12월12일 “숲속의 환상(50호)”이 인터넷 경매사상 최고 낙찰가인 1억1천만원, 1월9일에는 “아름다운 욕망(30호)”이 인터넷 경매사상 최고 낙찰가인 1억2천1백만원을 수립했다.

우리가 김화백 작품이 인터넷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를 갱신한 것을 축하하는 이유는 또있다. 그의 인생역정이 가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김화백은 15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 입선한 신동이다. 일제강점기에 15세의 나이로 일본으로 건너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본 가와바다 미술학교를 졸업(33년~36년)했다. 이 정도도 대단하다고 평가 받았지만, 돌아오지 않고 동경제국미술대학을 졸업(36년~39년)했으며 교내전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돌아와 1942년 조선미술전람회 특선을 했다.

다른 화가라면 여기서 중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1956년 다시 프랑스로 가서 프랑스 ACADEMI DE GRANDE CHAUMIERE를 졸업(56년~59년)했다. 그리고 프랑스 등 유럽에서 유렵의 미술을 익히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1982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루벤스훈장을 수훈 (파리 앙데빵당전)한데 이어 파리 보자르드전 금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고국에 돌아와 2002년 우리 정부로부터 역대 화가 중 최초로 생존 예술가에서 주는 문화훈장을 받았다.

그 어떠한 화가도 살아오지 못한 진정한 예술가의 삶을 15세 때부터 90세가 넘은 지금까지 고승과도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따라서 그의 말은 하나 하나가 우리 미술사다. 그는 누구와도 싸우지 않는 사람이다. 1인 시위로 모든 것을 바로 잡는 사람이다.

대표적인 사건은 1962년 국전에서 대학교수들이 받은 돈들을 다 돌려주도록 한 사건이다. 당시 언론은 사설을 통해 올해 작품선정이 최고라고 밝혔다.

김화백은 연재 소설비를 올려주지 않으면 삽화를 주지 않겠다고 1인 시위한 결과 연재소설비까지 올렸다. 뿐만 아니라 국내 최초로 패션쇼를 했다. 모델의 옷을 직접 가봉해 입혀놓고 창작한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그를 잊고 살아 왔다. 은둔의 화가로 알려졌던 김화백이 일반인에게 또다시 알려지게 된 것은 포털아트가 ‘아! 김종하’ 전이라는 초대전을 열었기 때문이다.

고승과도 같은 삶. 비굴함이나 비리에 타협하지 않고 조용히 살아 온 김화백의 작품의 인터넷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 경신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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