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북한보다는 해외에서 더 유명한 화가 최도열. 1918년생인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남다른 취미를 가졌다.
| |
 |
|
| |
| |
참대와 새 |
|
| |
서울에서 보통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조선일보가 주최한 학생미술전람회에서 안개 내리는 새벽길을 출품, 2등상을 받은 미술영재였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다예술전문학교에 입학했으며 1942년까지 일본대학 예술과를 졸업하였다.
조선화 화가로서 수많은 작품을 남긴 최화백은 구라파와 일본 등의 미술전시회에 출품해 좋은 평가를 받는 등 해외에서 더 많이 알려진 화가다.
일본 유학시절에도 그의 작품성은 크게 인정받았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저물어가는 날, 금강산 풍경, 촌가(42년) 등이 전람회에서 입선한 것이다. 1943년 귀국, 함흥에서 청탁그림들과 병풍그림을 그려 생계를 유지한 그는 전쟁 중에도 창작을 중단하지 않고 조선화 금강산 옥녀봉(52년 160*80 cm), 금강산 련주담(52년 160*80)을 그려 외국순회전람회에 내놓았다.
1952년 평양에서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지도원, 현역미술가로 활동하면서 풍경위주의 조선화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그중 조선화 <국화와 물고기>, <비료폭포>,<3월의 남천벌>, <풍성한 채과> 등의 작품은 국가 소장품으로 조선미술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국화와 물고기>는 전통적인 몰골기법으로 가을 국화와 쏘가리 한 마리를 정물화형식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단붓질법으로 물기 있게 그려 필치가 살아 있다.
전후 농촌의 정서를 형상한 <국화와 닭>도 몰골기법으로 그린 평상성이 높은 그림중에 하나이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최도렬은 자강도에서 주로 미술소품 창작을 하며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에 기여하다가 1980년대부터는 화조몰골그림들로 또다시 화단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창작한 그림 가운데에 <진달래>, <매화>, <목란과 꽃> 등 화조몰골그림들은 일본을 비롯한 해외전람회에 전시되었다.
대표작은 해금강(1954년), 금강산보덕굴(1954년), 만경대(1955년), 금강산병풍(1956년) 등이며 국화와 물고기, 풍성한 채과 등은 국가소장품으로 조선미술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 |
 |
|
| |
| |
새해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