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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짜리 ‘323 쿠데타’ 막전막후

한나라 소장파 55인 ‘공천권 반납 배수진’ 포기 내막

김동현 기자 | pen1969 | 2008.03.27 10:27:26

[프라임경제] ‘충신들’임을 자처한 한나라당 공천자 55명이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불출마를 요구하며 자신들의 공천권 반납 배수진까지 쳤던 지난 23일은, 단 하루 만에 꼬리를 내리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323 쿠데타’로 불렸다. 그만큼 전격적이었다.

   
 
  지난 23일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총선불출마를 요구했던 55명의 한나라당 소장파들 중 상당수는 '이재오계'로 분류된다.     
 
55명 중 친이계의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과 친한 인사들이 핵심에 섰고, 여기에다 나머지 사람들도 대부분 친이계로 분류되는 면면들이었기 때문에 ‘전격적인 쿠데타’라는 별칭이 붙을 만 했다.

△이 부의장이 결국 불출마 의사를 무시했고 △리더격인 이재오 의원마저 이상득과의 동반불출마 주장을 접은 뒤 출마키로 한 데다 △이 대통령이 동반불출마에 대해 격노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55인의 ‘거사’는 순식간에 김 빠져버렸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매우 급박했다. 핵심 인사 몇몇은 공천권을 실제로 내던질 각오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인사가 나서서 만류해 겨우 사태를 막았다고 한다. 단 하루 만에 막을 내린 ‘323 쿠데타’의 막전막후를 알아봤다. 

◆ A, B 의원 실제로 공천권 던져 

‘323 쿠데타’와 관련해 말들이 많지만, 한나라당 관계자들과 정치권 소식통들의 공통적인 평가는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우후죽순 모이는 바람에 요구 주장이 탄력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장에 참여했던 인사들과 당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을 통해 ‘323 쿠데타’ 현장을 재구성해보면, 다소 어이없는 측면이 있다. 

‘이상득 불출마’를 주장한 현역 A 의원은 B 의원과 함께 실제로 공천권을 반납할 작정이었다. 이명박직계로 분류되는 C씨가 나서서 A, B 의원을 진정시켰다. ‘거사’는 하루 만에 언제 그랬냐는 듯 수습국면으로 들어섰지만, 당시 상황은 긴박했다.

공천권을 포기할 작정이었던 한 의원은 “한두명 정도 공천권을 반납해도 그냥 밟고 지나갈 것 같았다”고 측근에게 털어놓았다. 

친이 즉, 범이명박계로 분류되는 55명 가운데 이른바 ‘이재오계’로 분류될만한 이들이 다수 포함된 것 때문에 55인의 ‘323 쿠데타’는 일면 ‘이재오의 난’으로 비치기도 했다.

55명 중 이재오계는 넓게 잡아 대략 20명 선. 기획은 이들 이재오계가 맡았다. 이들은 뭉쳤고 결집력이 있었다. 이런 가운데 ‘이상득 불출마’ 요구를 강행키로 한 것이다. ‘암묵적 권력 2인자’인 이 부의장을 정치적으로 숙청하려는 시도로 보였다. 

◆ 자칭 ‘걱정하는 후보들’

이들은 스스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걱정하는 후보들’이라 칭하고 △대통령직인수위의 월권과 과속 △고소영ㆍ강부자 내각이라 불리는 인사 실패 △원칙과 기준을 상실한 당 공천 등을 한나라당 위기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의 정점에 이 부의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 부의장을 향해 “‘형님 공천' ’형님 인사‘ 등으로 민심 악화의 주요 원인이 된 이상득 국회부의장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앞으로 일체의 국정 관여를 금하라”고 했다.

또 이 부의장의 최측근이자 권력 수뇌부 인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박영준 청와대 비서관에 대해 “부실 검증과 폐쇄적 인사 건의로 인사 파동을 초래한 청와대 관계자를 사퇴시키라”고 강조했다.

23일 기자회견을 할 때만 하더라도 55명의 ‘충신들’은 기세가 등등해 보였다. 숫자도 적은 게 아니었다. 사실상 총선 기간임에도 55명 정도의 공천자들이 동시에 한자리에 모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들이 순식간에 모여든 것은 ‘이재오 불출마 카드의 등장’ 탓이 컸다. 이재오 의원까지 불출마 결심을 한 마당이니 이상득 부의장이 더 이상 버티지 못 할 것이라고 봤던 것이다.

정치적인 계산도 있었다. ‘323 쿠데타’의 본질은 누가 보더라도 여권 내 권력투쟁의 일환이었지만, ‘이재오-이상득 동반불출마’가 명분으로 걸리면 ‘거사’가 권력투쟁의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 ‘이재오파’가 아닌 사람들까지 가세했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자신있게 공천권 반납 배수진까지 치면서 이상득 부의장 중심의 노장파와 정면으로 맞섰다. 그리곤 이명박 대통령 눈치를 봤다.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재오 의원 때문에 김이 빠졌다. ‘이재오-이상득 동반불출마’ 이야기는 출처 없는 소문처럼 돼 버렸고, 모든 것이 원래 자리로 되돌아갔다. 

◆ 출처 없는 이재오 불출마설

‘공천권 반납이 어쩌고’ 했던 입들은 굳게 닫혔다. 55인의 결속력은 급속히 줄어들었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이재오계’와 아닌 사람들의 향후 행동은 일치 될 수 없었다. 이상득 불출마를 요구할 명분도 약해졌다.

이런 정황 때문에 ‘이재오계’ 일부는 “소수가 선명하게 갈 수도 있었던 것이 다수가 되는 바람에 방향을 못 잡았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재오 의원 측에선 23일 밤 이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불출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언론에서 확대 해석했다는 입장이다. 한 측근은 “불출마 이야기가 어디에서부터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일각에선 ‘이재오 불출마 카드’가 이 의원과 전혀 상의되지 않은 채 나온 것이란 설도 돌았다. 이 이야기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얘기다.

55인 중 한 사람의 측근은 “이재오가 불출마한다는 이야기가 갑자기 돌았다”면서 “근데 정확히 누가 그 이야기를 처음 전했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이 측근은 “당시 상황 자체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분위기였다”고 덧붙였다.
 
자칭 ‘충신들’이 벌였던 23일의 ‘거사’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55명 중 한 사람은 그 날 그 자리에 왜 참석했냐고 묻는 질문에 “그냥 가자고 해서 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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