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전기차의 충전 속도는 이제 차량만의 문제가 아니다. 차가 아무리 높은 충전 성능을 갖춰도, 그 출력을 받아낼 충전기가 부족하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속도는 제한된다. 800V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될수록 충전 인프라의 출력 경쟁이 중요해지고 있다.
BMW 그룹 코리아가 국내 최초로 공용 400㎾ 초급속 충전기를 설치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설치 장소는 서울역 인근 BMW 차징 허브 라운지와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다. 각 2기씩, 총 4기가 운영된다.
핵심은 충전기 숫자보다 출력이다. 지금까지 국내 공용 급속충전 인프라는 100~200㎾급이 중심이었다. 최근 출시되는 고성능 전기차들이 800V 고전압 아키텍처를 앞세우고 있지만, 실제 충전 환경이 이를 충분히 받쳐주지 못하면 차량의 충전 성능은 스펙표 안에 머물 수밖에 없다.
BMW 그룹 코리아가 400㎾ 충전기를 꺼낸 배경이다. 더 뉴 BMW iX3와 같은 800V 전기차는 높은 전압을 바탕으로 짧은 시간에 많은 전력을 받아들일 수 있다. BMW 그룹 코리아에 따르면 400㎾ 초급속 충전기를 이용할 경우 80㎾h급 배터리 기준 잔량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8.5분이 걸린다.
8.5분이라는 숫자는 전기차 충전 경험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전기차 충전은 내연기관차 주유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인식이 강했다. 충전소를 찾고, 대기하고, 충전을 마치는 과정이 누적되면 전기차의 편리함은 쉽게 희석된다. 초급속 충전은 이 시간을 줄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양적 및 질적 성장을 모두 주도하고 있는 BMW 그룹 코리아가 400㎾ 초급속 충전기 4기를 설치 완료했다. ⓒ BMW 그룹 코리아
다만 충전 속도 경쟁은 차량 개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완성차 업체가 800V 전기차를 내놓는 순간, 충전 인프라가 같은 속도로 따라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조사가 강조한 초급속 충전 성능은 특정 조건에서만 가능한 수치로 남는다. BMW 그룹 코리아의 400㎾ 충전기 설치는 이 간극을 직접 줄이려는 움직임이다.
이번 충전기는 800V 전기차만을 겨냥하지 않았다. BMW 그룹 코리아는 최대 전류를 500A까지 확대해 400V 아키텍처 전기차도 충전 속도 개선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했다. 400V급 전기차는 충전기의 전류 한도에 따라 충전 속도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충전기는 최대 가용 출력을 약 200㎾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 결과 400V 전기차도 충전 소요 시간이 약 1.7배 줄어든다. 800V 전기차가 앞으로의 방향이라면, 400V 전기차는 현재 도로 위를 달리는 다수의 전기차다. 충전 인프라가 미래 기술만 바라볼 경우 기존 전기차 이용자는 체감 혜택에서 밀릴 수 있다. BMW 그룹 코리아가 400V 차량까지 함께 언급한 이유도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출력이 높아질수록 충전기의 관리 난도도 높아진다. 고출력 충전은 발열 관리가 중요하고, 케이블과 커넥터의 온도를 안정적으로 제어하지 못하면 출력 저하가 발생할 수 있다. BMW 그룹 코리아는 이번 충전기에 수랭식 냉각 시스템을 병행 적용했다. 높은 출력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냉각 구조를 강화한 것이다.
소음과 안전 문제도 함께 다뤘다. 초급속 충전기는 냉각 장치와 전력 제어 과정에서 소음이 발생할 수 있다. BMW 그룹 코리아는 작동 소음을 65dB 이하로 낮추고, 과전압·과전류 보호 시스템과 누설 감지, 케이블 과열 감지, 냉각 이상 감지 장치, 비상 정지 버튼 등을 적용했다. 충전 속도가 높아질수록 안전과 관리 기준도 함께 올라가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번 발표는 BMW 그룹 코리아의 충전 인프라 전략 안에서도 성격이 다르다. BMW 그룹 코리아는 지난 2022년 말부터 공공 개방형 BMW 차징 스테이션을 전국에 구축해 왔고, 현재까지 국내에 총 3030기의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했다. 올해 안에는 이를 4000기까지 늘릴 계획이다.
그동안의 충전기 확대가 접근성의 문제였다면, 400㎾ 충전기는 체감 속도의 문제를 겨냥한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설치 대수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충전기가 많아도 출력이 낮거나, 차량 성능을 충분히 받아주지 못하면 이용자는 여전히 긴 충전 시간을 감수해야 한다. 앞으로의 경쟁은 충전기를 얼마나 많이 세우느냐와 함께, 어떤 출력을 어느 거점에서 제공하느냐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BMW 그룹 코리아가 400㎾ 충전기를 서울역 인근과 영종도 드라이빙 센터에 배치한 점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서울역은 도심 접근성이 높은 거점이고, 영종도 드라이빙 센터는 BMW 브랜드 경험이 집중된 공간이다. 충전기를 생활권과 브랜드 거점에 함께 놓으면서, 전기차 충전을 차량 밖의 고객 경험으로 확장하려는 의도가 담겼다.
결국 이번 400㎾ 충전기 운영의 의미는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에만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800V 전기차의 성능을 국내 공용 인프라에서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전기차 시장이 성숙할수록 고객은 주행거리와 출력뿐 아니라 충전에 걸리는 시간까지 상품성으로 판단한다.
차량의 성능을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하면 전기차의 장점은 절반만 전달된다. BMW 그룹 코리아의 400㎾ 초급속 충전기 설치는 그 병목을 줄이려는 선택이다. 전기차 충전 경쟁은 이제 충전기 숫자를 늘리는 단계에서, 차량이 가진 성능을 얼마나 온전히 꺼내 쓰게 하느냐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