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와 창덕궁. 얼핏 보면 쉽게 연결되지 않는 조합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난 자동차 브랜드와 조선의 궁궐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과 거리도 존재한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포르쉐코리아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국가무형유산 전승교육사를 지원하고 한국과 독일의 역사적 인연을 되살리는가 하면, 한국 전통문화에서 가져온 디자인을 실제 포르쉐 차량에 입혔다.
그리고 이번에는 창덕궁이다. 포르쉐코리아는 9월1~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창덕궁 낙선재에서 'K-헤리티지 아트展, 이음의 선(線)' 특별전을 연다.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와 이수자, 현대 작가 등 48명이 참여해 전통공예와 회화, 설치, 사진 등 16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장소도 눈길을 끈다. 낙선재에서 석복헌과 수강재로 이어지는 공간을 따라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인 해석을 함께 보여준다.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와 포르쉐코리아가 나전·칠과 금박 기법을 활용해 제작한 협업 작품도 공개된다.

이번 전시는 포르쉐코리아가 지난 2022년부터 이어 온 사회공헌 프로그램 ‘포르쉐 퓨처 헤리티지’의 일환으로 국가무형유산의 보존과 전승을 지원하고 전통 문화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 포르쉐코리아
포르쉐가 한국 전통문화와 손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출발점은 2022년이다. 포르쉐코리아는 '포르쉐 퓨처 헤리티지'를 시작하며 국가무형유산 보존과 전승 지원에 나섰다. 국가무형유산 전승교육사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학생들이 궁중음식과 전통공예, 무용 등을 접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포인트는 '보존'보다 '전승'에 있다. 옛것을 간직하는 것과 함께 기술과 정신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포르쉐가 이야기하는 헤리티지와 한국 무형유산이 만나는 지점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포르쉐에게 헤리티지는 꽤 중요한 단어다. 911이 대표적이다. 1960년대 처음 등장한 이후 수십 년 동안 세대를 거듭했지만 한눈에 911임을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과 정체성은 유지한다. 과거의 형태를 박제하기보다 핵심을 남기면서 시대에 맞춰 계속 변화해왔다.
전통공예 역시 비슷하다. 장인이 기술을 배우고 자신의 시간을 더한 뒤 다음 세대에 넘긴다. 전승 과정에서 재료와 표현 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기술과 정신은 이어진다. 자동차와 전통공예라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계승하면서 발전한다'는 공통분모가 생기는 셈이다.

‘1899, 하인리히 왕자에게 보낸 선물’은 2023년 한∙독 수교 140주년을 맞아 외교 선물에 반영된 역사적 상징성과 가치, 그리고 문화 유산 전승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기획된 국외소재 전통공예품 재현 프로젝트다. ⓒ 포르쉐코리아
포르쉐코리아의 K-헤리티지 프로젝트도 해마다 조금씩 영역을 넓혔다. 2023년에는 '1899, 하인리히 왕자에게 보낸 선물' 프로젝트를 통해 고종이 독일 하인리히 왕자에게 선물했던 갑옷과 투구, 갑주함 등을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와 전승교육사 등 전통공예 장인들과 함께 다시 제작했다.
한국 전통공예를 지원하면서 100여년 전 한국과 독일 사이의 역사적 연결고리도 되살린 프로젝트였다.
2024년에는 전통문화가 자동차 안으로 들어왔다. 포르쉐코리아 출범 10주년을 기념해 한국에서만 판매한 '타이칸 터보 K-에디션'이다. 옛 왕실 인장에서 영감을 얻은 전용 로고를 적용하고 한옥 지붕과 서울의 도시 풍경, 교량, 백두대간 등을 하나의 그래픽으로 표현했다.
한국적인 상징을 장식처럼 더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독일 본사의 포르쉐 익스클루시브 매뉴팩처와 스타일 포르쉐까지 개발에 참여하면서 한국적인 요소를 포르쉐의 디자인 언어 안으로 가져왔다.
여기서 포르쉐와 한국 전통공예의 또 다른 접점이 나타난다. 바로 '장인정신'이다. 포르쉐는 차량 한 대를 고객 취향에 따라 세밀하게 만드는 개인화 프로그램을 브랜드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한국의 나전과 칠, 금박 역시 사람의 손과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런 장인 중심의 제작 방식은 포르쉐가 강조해온 '매뉴팩처'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2025년에도 흐름은 이어졌다. 전승공예특별전을 통해 국가무형유산 전승 분야 장인들의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하며 미래 세대가 전통공예를 접할 수 있는 접점을 넓혔다.
그렇게 5년째를 맞은 올해 무대가 창덕궁으로 옮겨왔다. 이번 전시 주제는 '몽로(夢路)-꿈의 길에 서다(Driven by Dreams)'다. 'Driven by Dreams'는 포르쉐가 오랫동안 강조해온 브랜드 메시지다. 포르쉐가 자신의 언어인 '꿈'을 한국 장인들의 여정과 연결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마티아스 부세 포르쉐코리아 대표 역시 이번 전시를 소개하며 포르쉐가 생각하는 헤리티지를 분명하게 설명했다.
"포르쉐에게 헤리티지는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꿈과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원동력이다. 이번 특별전이 오랜 시간 한 길을 걸어온 장인들의 꿈과 여정을 만나고, 그 가치가 다음 세대의 꿈으로 이어지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포르쉐코리아가 지난해 국가유산진흥원과 함께 국가무형유산전수교육관에서 전승공예특별전 '열 번째 용의 아이와 상상동물'과 전통예술 공연 '상상동물과 떠나는 어린이 풍류'를 진행했다. ⓒ 포르쉐코리아
포르쉐코리아가 한국의 헤리티지를 계속 찾는 이유도 이 문장 안에서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 1948년 첫 스포츠카를 선보인 포르쉐 역시 8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브랜드다. 역사를 자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의 디자인과 기술, 이야기를 현재 제품과 브랜드 경험 안에서 끊임없이 재해석한다. 한국의 무형유산 역시 오랜 기술을 현재에 이어오면서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
여기에 한국 시장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고객에게 포르쉐를 독일에서 건너온 수입차 브랜드로만 남겨두기보다 한국 문화와 지속적인 접점을 만드는 편이 브랜드 관계를 쌓는 데 유리하다. 타이칸 터보 K-에디션은 문화 후원에서 시작된 관계가 실제 제품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그래서 포르쉐코리아의 K-헤리티지 행보에서 다음 장면도 궁금해진다. 2022년에는 전승교육사들의 활동을 지원했고, 2023년에는 한독의 역사를 되살렸다. 2024년에는 왕실 인장을 포르쉐에 새겼고, 2025년에는 전승공예를 전시로 풀었다. 그리고 2026년에는 창덕궁 안에서 나전·칠과 금박을 포르쉐라는 이름과 나란히 세운다.
앞으로 한국의 전통공예가 다시 한 번 포르쉐 차량 안으로 들어갈지, 혹은 또 다른 방식의 협업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왕실 인장에서 창덕궁까지 이어진 지난 5년의 행보를 보면 한 가지는 분명하다. 포르쉐에게 K-헤리티지는 일회성 행사의 소재가 아닌 한국과 오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연결고리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