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생산성이 얼마나 높아질 것인가에 주목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AI가 일을 대신하면 사람은 어디에서 일을 배우는가. 최근 MIT AI 사용 연구위원회는 대학생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AI에서 곧바로 답을 찾으며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포기하는 '인지적 항복(cognitive surrender)'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I로 과제를 완성했지만 정작 충분히 학습하지 못한 채 '학습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AI 사용 자체가 아니다. 배움에 필요한 고민과 시행착오까지 AI에 넘기고 있느냐이다.
대학에서 '사고의 외주화'가 시작됐다면 기업에서는 '기초업무의 외주화'가 진행되고 있다. 신입사원이 맡던 자료조사와 문서작성, 데이터 정리, 기초 분석, 코딩을 생성형 AI와 AI 에이전트가 빠르게 대신하고 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2023~2025년 생성형 AI 고노출 직업의 15~59세 취업자는 24만7000명 증가했는데 이 가운데 수도권이 80.8%를 차지했다. 반면 20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생성형·에이전틱 AI 관련 직업의 취업자가 감소했다. 한국은행은 AI가 기초 업무를 대신하면서 기업이 경력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역설이 생긴다. 기업이 경력자를 원하면서 신입사원의 일을 AI에 맡긴다면, 신입사원은 어디에서 경력자가 되는가.
사실 조직의 초급 업무는 단순한 반복 노동만은 아니었다. 신입사원이 자료를 찾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상사의 지적을 받아 수정하는 과정에서 업무의 맥락과 판단 기준을 익혔다. 작은 실패와 반복이 쌓이며 초보자는 숙련자가 됐다. AI가 이 과정을 몇 분으로 단축하면 단기 생산성은 높아지지만 사람이 숙련되는 과정까지 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AI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한 법률 소프트웨어 기업은 AI 도입과 함께 제품·개발·QA·보안·배포로 이어지던 업무 구조를 재설계했다. 그 결과 일부 기능 개발 과정이 약 15일에서 4시간으로 줄었고, AI 지원 병합 요청 비중은 약 3%에서 68%로 높아진 반면 취약점 밀도는 76% 감소했다. 중요한 것은 AI 자체가 아니라 사람의 역할과 책임, 검증 방식까지 함께 바꿨다는 점이다.
이제 기업의 인재육성도 같은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AI 교육을 얼마나 제공했는가보다 AI 시대에도 사람이 직접 경험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정해야 한다. 직무를 'AI가 해도 되는 일', 'AI와 사람이 함께 해야 하는 일', '사람이 판단하고 책임져야 하는 일'로 다시 나눌 필요가 있다. 특히 신입사원에게는 문제를 정의하고, AI의 결과를 검증하고,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며 실패에서 배우는 '인지적 마찰'을 의도적으로 남겨야 한다. 앞으로 HRD는 AI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AI와 함께 일하면서도 사람이 계속 숙련될 수 있는 경험을 설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AI를 금지하기보다 'AI를 사용했는가'가 아니라 'AI를 사용하고도 무엇을 스스로 생각했는가'를 평가해야 한다. AI로 자료를 찾고 초안을 만들더라도 문제정의와 근거 검증, 토론과 설명은 학생에게 남겨야 한다. 기업이 신입사원의 기초업무를 AI에 맡긴다면 대학에서는 오히려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와 기업과제, 현장실습과 일경험을 확대해야 한다. 대학에서도 시행착오를 경험하지 못하고 기업에서도 초급 업무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초보자가 숙련자로 이동하는 사다리 자체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AI 시대 인재육성의 질문은 "AI를 얼마나 잘 쓰는 사람을 만들 것인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AI가 일을 대신하는 동안 사람은 어디에서 생각하고, 실패하고, 배우며, 경력자가 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AI는 일을 빠르게 만들 수 있지만 경험까지 대신 쌓아주지는 않는다. 기업이 경력자를 원하면서 정작 경력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없애는 모순에 빠져서는 안 된다. AI에게 일을 맡기더라도 사람에게서 성장의 과정까지 빼앗아서는 안 된다.

이윤선 인력경영학자/원광대 미래인재개발처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