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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보다 진한 것은 돈이었다?

금호아시아나 그룹 경영권 다툼으로 본 재계 '형제 갈등사'

박지영 기자 | pjy@newsprime.co.kr | 2009.08.03 09:08:38

[프라임경제] 물보다 진한 게 피고, 피보다 진한 건 돈이다? 황금만능 사회를 비꼰 말이지만 가슴 한켠 뜨끔함은 감출 수 없다. 돈 문제로 인한 패륜범죄는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재벌집안도 돈과 경영에 얽힌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터져 나온 이른바 ‘형제의 난’이 단적인 예다. 재계 ‘앙숙형제’들을 살펴봤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형제 경영’이란 아름다운 전통은 결국 형제간 경영권 다툼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그러나 ‘형제의 난’을 겪은 기업은 비단 금호아시아나그룹만이 아니다.

◆경영권 둘러싼 형제 갈등

창립 113년째를 맞는 두산그룹 또한 ‘형제의 난’을 피해갈 순 없었다. 두산그룹은 장자 승계를 바탕으로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경영권을 맡는 방식으로 유명하다. 박두병 초대 회장이 세운 공동 소유, 공동 경영의 원칙이 3세에 이르러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5년 3남인 당시 박용오 전 두산 명예회장이 두산산업개발이 계열분리를 주장하다 형제들 사이에서 완전히 축출당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가족경영의 굳건한 신뢰에 흠집이 나는 아픔을 겪었다.

실제 두산은 현재 오너가 3세 형제들(박용성·용현·용만)이 나란히 주력계열사인 중공업·건설·인프라코어를 맡아 최고위층을 형성하고 있고 박용오 전 회장 부자만 그룹 경영에서 빠져 있다.

형제간 다툼이 법정까지 간 사례도 있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과 신준호 회장은 지난 1996년 말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의 롯데제과 공장부지 37만평을 놓고 한바탕 소송을 벌인 바 있다. 형 신격호 회장이 동생 신준호 부회장에게 맡겨둔 공장부지 등을 돌려달라고 하자 신 부회장이 이를 거부하면서 형제간 ‘땅 싸움’으로 비화된 것.

이러한 형제간 불화는 다음해인 1997년 동생인 신준호 회장이 형에게 사과의 뜻을 전달하면서 일단 봉합됐다. 이때 형 신격호 회장은 땅을 돌려받는 대가로 롯데우유 지분 45%를 동생 신준호 회장에게 넘겼다. 그러나 동생 신 회장은 그룹 부회장에서 롯데우유 부회장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집안 내분’이라 하면 범 현대가를 빼놓을 수 없다. 현대그룹 경영권 승계는 곧 ‘왕자의 난’으로 통할 정도다. 2000년 3월부터 6월까지 진행된 ‘왕자의 난’은 후계다툼을 벌이던 정몽구 회장이 동생 정몽헌 회장의 최측근인 이익치를 경질하면서 시작됐다.

결국 이 싸움은 아버지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몽구·몽헌 두 형제의 동반퇴진을 연출하면서 귀결됐다. 이후 현대그룹은 2남인 몽구 회장이 현대자동차그룹을 계열 분리하면서 두 개사로 쪼개졌다.

그로부터 3년 뒤, 현대그룹에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소그룹으로 전락한 현대그룹의 좌장이 된 정몽헌 회장이 정치적 사건에 휩쓸리는 비운을 겪게 된 것이다.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던 정 회장은 2003년 8월4일 특검수사를 받던 중 투신자살했다.

고 정몽헌 회장의 사후 부인 현정은 씨가 회장에 취임해 그룹을 경영했지만 고 정몽헌 회장의 작은아버지인 정상영 명예회장이 현대그룹을 계열사로 편입하려고 주식을 매입하면서 양측의 분쟁은 크게 확대됐다. 이 사건은 ‘삼촌이 조카의 그룹을 통째로 삼키려 한다’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현대가의 적통성 찾기 싸움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007년에는 이른바 ‘시동생의 난’까지 일어났다. ‘시동생의 난’은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이 형수인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 지분을 대거 매입한 사건이다.

◆법정다툼 밥먹듯

한화는 1981년 타계한 고 김종희 창업주가 두 아들의 지분 분할에 대한 명확한 유언을 남기지 않은 게 불씨가 됐다. 처음에는 김승연-호연 형제의 역할 분담 구도에 별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1992년 분가 과정에서 뒤늦게 일이 터졌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주요 계열사 경영에서 밀려난 데 반발해 형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 소송을 제기한 것. 이 송사는 30여 차례나 재판을 벌일 정도로 지루한 공방으로 이어졌다.

두 형제는 그러나 1995년 어머니 강태영 여사의 칠순 잔치를 계기로 갈등에 마침표를 찍었다. 형제 간 화해를 권유하는 주변의 말에 김호연 회장이 용단을 내려 소를 취하한 것이다. 소송이 시작된 지 3년6개월 만이자 김승연 회장이 부친의 갑작스런 작고로 그룹 회장에 취임한 지 14년 만의 일이었다.

아주 오래된 일이지만 삼성그룹에도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장남인 맹희 씨를 제치고 3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1960년대부터 일찌감치 그룹의 후계자로 낙점 받고 활발한 경영 수업을 받던 맹희 씨는 사카린 밀수 혐의를 받았던 ‘한비사건’ 등 몇 차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아버지와 심각한 불화를 빚게 되고 결국 후계구도에서 낙마하는 비운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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